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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르 디플로

"세트 메뉴를 바꾸시겠습니까?" 아니오, 당신을 바꾸겠습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2월호 6-7면. <패스트푸드의 식인귀들> - 토마스 프랭크(역사학자)


음식을 주문하면 아무리 늦어도 5분 이내에 따뜻한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가 나오고, 이를 다 먹는데에는 10분도 걸리지 않는 패스트푸드.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언론과 책에서 귀 아프도록 들었지만 시간이 없을때나 혼자 밖에서 식사를 때워야 할 때에는 늘 찾게되죠.


우리나라에서 햄버거, 감자튀김, 그리고 음료수로 구성된 햄버거 세트의 가격은 보통 5천원 내외입니다. (2014년 2월 14일 기준(런치 할인 제외) : 맥도날드 빅맥세트 5,300원, 롯데리아 불고기버거 세트 5,000원, 버거킹 와퍼주니어 세트 5,400원) 하지만 고객에게 이 메뉴를 제공하는 직원들이 받는 임금을 과연 얼마일까요? 대부분 최저임금을 겨우 준수하고 있을 뿐 그들이 오직 패스트푸드 점에서 받는 월급만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 한 시간 내내 음식을 만드는 일들을 하고 있지만, 상당수 업체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신의 시급으로 자신의 매장에서 판매되는 햄버거세트를 겨우 구매하거나, 구매하지 못할 수준의 시급만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미국의 최저임금인 7.25 달러를 살짝 웃도는 수준에서 형성된 노동자들의 시급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고, 결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시작된 패스트푸드 직원들의 시위가 퍼져서 무려 100여개 시에서 사실상 전국파업 수준으로 번진 것 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시위는 경영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패스트푸드 식당의 음식을 만드는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장기간의 교육이 필요하지도 않거든요.


산업프로젝트의 산물인 패스트푸드 매장의 급여조건은 노동자를 마요네즈 병처럼 교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자 에릭 쉴로서는 자신의 저서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이렇게 썼다. “저렴한 비용으로 일손을 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문성이 없는’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다. 남녀 직원을 쉽게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의존도도 크게 완화된다.”


패스트푸드사진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ast_food_01_ebru.jpg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질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실업상태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주로 하던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 시장에 정부차원에서의 고용압박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이나 고령자들을 채용하는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패스트푸드 경영자들은 몰려드는 구직자들 중에서 굳이 불만많고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는 자들을 뽑을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컨대 패스트푸드에서 일하는 것은 일종의 국가를 위한 봉사활동, 즉 과거 선조들이 이행한 현대판 병역의무인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기계와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마존을 시작으로 일부 업체에서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배송체계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되기 시작되었으니 언제나 사람이 해야할 것만 같았던 배달사원자리도 이제 안전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패스트푸드 식당의 직원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주문을 받을 때 마다 "세트 메뉴를 바꾸시겠습니까?" 라고 고객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들의 불만을 알게 된 경영자들은 급여나 업무환경을 고치기 보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 입니다. "아니오, 당신을 바꾸겠습니다."


기사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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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14.2 - 10점
르몽드(월간지) 편집부 엮음/르몽드(월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