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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시/수필

조지 오웰 작품의 뒷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서평] 조지 오웰의 에세이 선집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 / 박경서 역 / 실천문학사 출판 / 출간일 2003-06-20. 


흔히 조지 오웰이라 하면 <동물농장>과 <1984>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의 에세이들과 평론들이 주는 매력은 소설이 주는 무게감 못지 않습니다. 오늘 살펴볼 산문선집은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조지 오웰의 에세이들과 평론을 엄선한 박경서 교수가 번역한 <코끼리를 쏘다> 라는 책 입니다. 특히 제국주의 경찰로 근무하면서 직접 체험한 제국주의의 허상과 식민지의 비극을 고발한 소설 <버마 시절>이나 버마에서 유럽으로 돌아와 하층민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얻은 경험들과 사회 문제에 대한 오웰 스스로 생각한 대안들을 다룬 르포르타주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을 읽은 독자라면 작품에는 실리지 않은 뒷이야기들이 담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관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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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5 - [Reading Note/희곡/르포르타주] - 조지 오웰이 경험한 밑바닥 사람들의 웃픈 이야기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인간의 추악함과 식민주의의 비극을 체험한 식민지에서 보낸 나날들


식민지의 경찰로 근무하던 버마 생활에서 겪은 일들을 다룬 수필들은 이 선집의 1부에 모여있습니다. 원주민 사형수가 교수형을 당하는 하루를 묘사한 수필 <교수형>에서 그가 식민지를 억압하는 제국주의의 추악한 모습을 깨달은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길 위의 조그만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옆으로 옮겼다. (...)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 <교수형> 中 p.26


불과 2분 후면 목숨을 잃을 죄수지만 그는 웅덩이의 물을 밟지 않기 위해 이를 피해 걸어갑니다. 작품에서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살아숨쉬는 인간적인 모습을 짓밟아야 하는 제국주의 경찰이라는 직업은 오웰을 힘들게 했습니다.


이 산문선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라는 수필은 마을에 난동을 부리고 있는 발정난 코끼리를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오웰이 결국 군중들의 기대심리와 백인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결국 코끼리를 쏘게 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는 결국 코끼리를 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으니 그 일을 수행해야만 했다. 나는 2천여 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압박을 가하는 기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총을 든 채 공허함, 다시 말해 동양에서의 백인 지배의 무익함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 나는 이 순간 백인이 전제 군주가 되면 파괴되는 것은 백인 자신의 자유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나를 위시해 동양에 와 있는 모든 백인들의 생활은 원주민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었다. - <코끼리를 쏘다> 中 pp.38-39.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는 코끼리였지만 원주민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에 비웃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코끼리를 쏘아 죽이게 된 오웰의 모습에서 우리는 식민주의가 피지배민 뿐만 아니라 지배하는 계층도 파괴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웰이 <카날로니아 찬가>를 출판한 즈음인 1938년 프랑스 식민지 모로코에서 요양차 보내면서 목격한 피지배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묘사한 <마라케시>라는 작품에서 오웰은 결국은 끝나게 될 식민지 지배를 걱정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불안에 돌직구를 날립니다.


그러나 모든 백인들이 옆에서 행진하는 흑인 병사들의 모습을 볼 때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놀려먹을 수 있을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들은 그들의 총부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게 될까?' <마라케시>  p.72


밑바닥만으로 만족못한 오웰, 유치장에 가다 


버마에서 돌아와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기록한 르포르타주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에 포함된 <구빈원>과 <여인숙>도 이 선집에 포함되어 있지만, 실리지 않은 산문들도 여기 실려있습니다. 부랑자들과 홉 농장에서 홉 열매를 따던 생활을 기록한 <홉 열매 따기>는 홉 농장 주인들의 임금착취를 주로 다룬 글이지만 노숙인을 막기 위한 런던 경찰의 단속의 무의미함을 서술한 오웰의 문장이 훨씬 기억에 남습니다.


경찰관은 주변을 순찰하며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 일으켜 세우곤 했다. 우리는 그들이 지나가면 즉시 다시 잠들었으며, 이것은 저녁 여덟시부터 다음날 새벽 세시나 네시까지 계속되는 일종의 게임 같았다. - <홉 열매 따기> 中 p.167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에서도 오웰이 강하게 비판을 했던 영국 당국의 부랑자 문제에 대한 접근의 무의미함은 오웰의 기록으로 우리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김니다. 한편, 밑바닥 인생 체험만으로는 그의 호기심을 충족하지 못했는지 심지어 유치장에 들어가고파 술취한 주정뱅이인척 경찰에게 일부러 붙들렸다가 풀려나는 이야기는 <유치장>이라는 산문에 실려있습니다. 교도소 범죄인들의 심리를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결국 오웰은 유치장에 붙들려있다가 벌금만 선고받고 풀려나고 말지만 유치장 속 범죄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영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내가 신경쓰이는 건 감옥이 아니야. 일자리를 잃는 게 걱정돼." 나는 이런 사실이 자본주의자들의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의 힘이 약해지는 징후라고 생각한다. - <유치장> 中 p.156.


산문집에는 소개한 글들 외에도 오웰의 문학적, 정치적 견해를 밝힌 글들과 유럽 문학에 대한 비평 등 다양한 주제의 25편의 글들이 모여있습니다. 오웰의 문학에서 느끼지 못한 작가 그 자체를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본 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14.02.1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