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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예술문화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

[서평]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릭 게코스키 씀 / 박중서 옮김 / 르네상스 / 2013.04 / 17,000 원)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도난당했던 국외로 반출된 유물들의 반환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대한제국과 조선 왕실의 국새와 어보 등 의 유물이 반환되기도 했습니다. 불법적으로 반출이 된 점이 확인된 유물이라면 환수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지만 매매를 통해서 팔려나갔다면 그 과정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시 되돌리기가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팔려간 문화재는 찾아올 수라도 있지만 훼손되어 버린 문화재는 또 어떨까요? 목조 건축물이 다수인 우리의 옛 건축물들은 화재에 취약합니다. 전쟁 등으로 불탄 목조 문화재들도 많고 가까운 경우로 낙산사나 숭례문 같은 화재 사건도 있었습니다. 불에 탄 문화재를 다시 복원한다고 했을 때 새로 만든 작품이 이전의 가치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요?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을 쓴 릭 게코스키는 희귀 초판본 거래업에 종사하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단순히 희귀 서적을 거래하는 업자로 그치는게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글솜씨로 특별한 책들을 펴낸 글쓴이이기도 하지요. 이 책에서 릭 게코스키는 예술 작품의 훼손을 통해 예술 작품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이 상실되는 사건, 그 예술 작품의 가치, 그리고 이를 훼손할 권리에 대한 15편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문화 유산의 훼손과 관련한 도덕적 문제

문화 유산과 관련한 훼손에는 복잡한 도덕적 문제가 따라오지 마련입니다.

"필립 라킨이 사망하기 직전에 그의 일기를 파쇄기에 넣어 난도질한 비서의 행동은 옳았는가? 또는 바이런의 유언 집행인들의 그의 <회고록>을 불태운 행동은 옳았는가? 자신의 미간행 원고를 전부 태워 없애라는 카프카의 마지막 부탁을 저버린 막스 브로트의 행동은 옳았는가?" - p.17 서문

이와 관련해 논의를 해볼 만한 유물은 대영박물관에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엘긴 경의 대리석상들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온 유물입니다.  하지만 이 행동을 비난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그 유물이 19세기 아테네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는 점이죠.  엘긴 경을 비롯해 이 문화재를 약탈한, 혹은 보관할 목적으로 가져간 경우는 꽤 많아서 현재 열 개의 박물관에 이 당시의 유물들을 보존 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그 중 대부분은 유물 근처 주민들의 건축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소실된 부분은 전체 유적의 절반 정도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비난 받아 마땅한 행동인 약탈 덕분에 문화 유물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이 유적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에 의해 박물관에 보관되어 전 세계인이 지금까지 그 문화재를 보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 행동의 평가는 매우 어렵습니다.


상실된 예술작품이 갖는 매력

책에는 상실된 예술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무래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일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이 그림은 1911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 당하고 2년 뒤 이탈리아에서 나타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그림액자 제작자 빈첸초 페루자가 이 그림의 거래를 시도하다가 체포된 것이죠. 그는 나폴레옹이 약탈한 <모나리자>를 고국으로 도로 가져왔을 뿐이라 주장했고, 이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 들여졌는지 지은 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짧은 7개월의 징역형을 살았습니다.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아 그의 복역 기간 동안 감옥에는 쏟아지는 편지와 음식으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도난 당한 이후 그림에는 다른 그림들로 대체 불가능한 에피소드가 또 누적되었으며 이는 이 그림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지금도 박물관을 방문한 방문객들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를 뚫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작품들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데, 이는 단순히 그 내재적인 특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토록 많은 작품 가운데 이토록 적은 작품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유산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그리고 우리가 이런 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증거인 셈이다." p.238 - '연약한' 문화유산의 운명

책에 수록된 15장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다소 동떨어져 보인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만 바로 작년 우리나라의 제주 중문단지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카사 델 아구아'가 불법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강제 철거된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입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복원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를 문화재의 훼손의 예를 통해 풀어 쓴 독특한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 10점
릭 게코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