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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샘/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26. 허풍쟁이 거인 흐룽니르와 토르의 결투

계속 토르 신의 모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는 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이야기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트가르트-로키 성에서의 대결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주는 허풍쟁이 거인 흐룽니르와 '외딴 섬 결투'를 벌이게 되는 토르 신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연재

21. 거인에게 시집가게 된 토르 이야기

22. 천둥의 신 토르

23. 토르의 시종 : 트얄피와 뢰스크바

24. 어마무시한 거인 스크리미르와의 만남

25. 우트가르트-로키 성에서의 대결




어느 날 오딘 신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신의 말 슬라이프니르를 타고 거인들의 나라 요툰하임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오딘 신은 거인 흐룽니르를 만났습니다. 흐룽니르에게는 황금갈기(굴팍시 Gullfaxi)라는 말이 있었는데 말 다루는 솜씨가 좋기로 유명한 거인이었습니다. 흐룽니르를 스쳐지나가면서 오딘 신이 자신의 머리를 걸며 자신의 말의 빠른 발을 자랑하며 달려가자, 흐룽니르 또한 재빨리 자신의 말에 올라타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오딘 신의 허풍을 꺾으려는 요량이었지요.


거인은 거인 나름의 자존심 때문에, 오딘 신은 자신의 목이 달린 경주였으니 서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슬라이프니르가 워낙 빨랐기에 거인보다 한참 빨리 달릴 수 있었고 어느 덧 시간은 흘러 신들의 영역이 아스가르트의 성벽 안에 당도하였지만 흐룽니르는 알아채지도 못하고 내달렸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딘 신의 궁전인 발할의 문 앞이었죠.


아제 신들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거인을 술잔치에 초대하였고, 대담한 거인 흐룽니르는 자연스레 참석하였습니다. 거인의 풍채를 보고 신들은 자리를 비운 토르 신의 거대한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거인을 대접하였습니다. 오딘 신을 따라잡으려고 몸이 한껏 달아오른 상태에서 거대한 술잔의 술을 한번에 들이키고 나니 제아무리 거인이라도 술에 잔뜩 취하고 말았습니다.



발할에서의 신들의 연회 모습



이때부터 거인 흐룽니르의 허풍이 시작됩니다.


"이까짓 발할, 내가 통째로 들어올려 겨드랑이에 끼고 요툰하임으로 가져갈 수 있어. 아스가르트는 바다에 빠뜨리고 너희 신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버릴 테다. 다만 어여쁜 프라야와 지프만 살려두고 마누라 삼아 하루씩 번갈아 데리고 잘 것이야!"


무례한 언사였지만 신들은 그의 허풍이 재밌다는 듯이 술을 더 따라주며 놀아주었지만 점점 그의 허풍이 지루해졌습니다. 프라야 여신이 계속 술을 따라주긴 했지만 거인은 취해 나가떠러지긴 커녕 허풍만 점점 심해졌고 신들은 이제 토르 신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토르 신이 나타났습니다. 신들의 홀에서 거인 하나가 술에 취해 떠들고 있는 꼴을 보고는 묠니르를 움켜쥐며 크게 호통을 쳤지요. 흐룽니르는 놀라기는 커녕 못마땅한 표정으로 오딘 신이 자신을 초대하였다고 대꾸하였죠. 


토르 신이 다가오며 그 초대를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하자 흐룽니르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무기도 없는 자신을 죽여봤자 토르 신에 명예가 되지 않을 터이니 요툰하임 경계선 근처에서 결투를 벌이자 하였습니다. 바로 게르만 신화에 종종 등장하는 '외딴 섬 결투(Holmgang)'을 벌이자는 것이었지요.


지금까지 어떤 거인도 감히 토르 신에게 당당히 결투를 신청한 적이 없었기에 토르 신도 은근히 속으로 놀랐지만 토르 신은 거인의 제안을 물리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양측은 결투 날짜를 정하고 헤어졌습니다. 


흐룽니르는 얼른 말을 타고 거인들의 세계인 요툰하임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인들은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흐룽니르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거인 중 가장 강한 흐룽니르가 토르를 물리쳐 준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요. 


약속한 날짜가 되자 거인들은 '그리오투나가르트'(Griottunagardr)에 모여 거대한 점토 거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키가 9마일이나 되고 가슴둘레가 3마일이나 되는 거대한 거인이었지만, 마땅한 심장을 찾지 못해 암말 하나를 잡아 넣어두었습니다.  산악 거인이었던 흐룽니르는 숫돌을 어깨에 둘러매고 돌 방패를 차고 토르 신을 기다렸습니다.


토르 신이 나타났는데 점토 거인은 큰 도움이 안되었습니다. 암말의 심장을 달아놔서인지 어찌나 겁이 많아서 토르 신이 오는 소리만 듣고도 겁을 잔뜩 집어먹고 오줌을 지리고 비실비실 거렸습니다. 토르 신은 트얄피를 데리고 결투장소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택한 '외딴 섬 결투'는 장비는 마음껏 고를 수 있지만 한번 싸움이 시작되면 한쪽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잔인한 결투였습니다. 



게르만 족의 외딴 섬 결투를 묘사한 그림. Egill Skallagrímsson engaging in holmgang with Berg-Önundr, painting by Johannes Flintoe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인 트얄피가 토르 신보다 먼저 흐룽니르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흐룽니르가 방패를 가졌네. 하지만 방패를 잘못 들었구나, 요툰 거인아. 너는 방패로 앞을 가리고 있지만, 토르 신은 벌써 네 꼴을 보고는 땅속으로 들어갔어. 이제 땅 밑에서 너를 공격할 거다, 이 멍청아."


이 말을 들은 흐룽니르가 재빨리 방패를 땅에 놓고 그 위에 올라섰지만 이는 트얄피의 거짓말이었지요.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치더니 토르 신이 순식간에 나타나 묠니르를 거인을 향해 던졌습니다. 흐룽니르도 숫돌을 얼른 망치를 향해 던졌지요.





망치와 숫돌은 하늘에서 부딪쳤으나 숫돌은 이내 두 조각으로 쪼개져 한 조각은 땅으로 떨어지고, 나머지는 토르 신에게로 날아가 머리에 박혔습니다. 아, 이때 땅에 떨어진 숫돌 조각은 후에 세상에 있는 숫돌산들이 되었다는 군요.


한편 묠니르는 숫돌을 쪼개고 그대로 날아가 흐룽니르의 두개골을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리고 말았습니다. 흐룽니르는 이내 쓰러졌는데 하필 그 자리에 토르 신이 머리에 숫돌조각이 박힌채 쓰러져있었죠. 큰 부상을 입고 있던 토르 신에게는 설상가상의 재난이었죠.


이때 트얄피는 점토거인과 싸우고 있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인 트얄피는 암말의 심장을 단 느릿한 점토거인을 손쉽게 싸우고 주인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 혼자서 거인의 발 밑에 깔린 토르 신을 구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아제 신들이 달려와서 거인의 발을 들려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자 토르 신과 거인 여인 야른작사(Jarnsaxa)사이에서 태어난 토르 신의 아들 마그니(Magni)가 달려왔습니다. 아직 태어난지 사흘 밖에 되지 않은(태어나서 겨울을 세번 넘긴 아기라는 짐로크 판의 기록도 있으며, 이 이야기는 1997년 출간된 아르눌프 크라우제의 새 번역을 따른 안인희의 북유럽신화에 실린 이야기를 옮깁니다) 아기인 마그니는 아장아장 기어와서는 흐룽니르의 발을 손쉽게 치워버렸습니다. 토르 신의 아들인 마그니는 토르 신의 힘과 거인 어머니의 힘을 물려받은 존재였죠. 자신의 자식의 힘을 경험한 토르 신은 자랑스러워하며 흐룽니르의 말 황금갈기를 마그니에게 주었습니다. 욕심쟁이 신 오딘은 귀한 말을 거인 여자와의 혼혈인 손주에게 주었다고 시샘하기도 하였습니다. 본인은 세상 최고의 말 슬라우프니르를 가지고 있으면서 말이죠.


토르 신은 머리에 숫돌을 꽂은 채로 아스가르트로 향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려서 정신이 없었죠. 집으로 가던 길에 마법을 쓸 줄 아는 그로아(Groa)를 만났습니다. 그로아는 마법을 써서 숫돌을 빼고 있었는데 토르 신은 그로아를 기쁘게 해주려는 의도로 성급하게 그로아의 남편을 거인들의 나라에서 구해온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로아(Groa)의 모습



남편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로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마법의 주문을 잊어버리고 말았고, 토르 신의 이마에 박힌 숫돌은 영영 박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그 누구도 숫돌을 함부로 던져서는 안되었다고 합니다. 숫돌을 던지다 토르 신을 자극하면 엄청난 폭풍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북유럽 사람들의 믿음이 생긴 것이지요.


다음 주에도 토르 신의 모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다음 주는 히미르의 세가지 시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





<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는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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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안인희, 2011,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웅진지식하우스.

강응천, 1998, 바이킹 전사들의 북유럽 신화여행, 마루(금오문화).



http://en.wikipedia.org/wiki/Holmgang

http://en.wikipedia.org/wiki/Hrungnir

http://en.wikipedia.org/wiki/Valh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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