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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시/수필

노무현, 그가 그립다

[서평] <그가 그립다> (유시민 외 씀 / 생각의길 / 2014.05 / 15,000 원)


노무현 전 대통령 5주기에 즈음하여 다양한 책들이 나왔습니다. 윤태영 비서관의 <기록>이나 청와대 연설비서관 출신의 강원국 씨의 <대통령의 글쓰기> 등의 책과 함께 22인의 글쓴이들이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쓴 22편의 글을 모은 <그가 그립다>도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전속 이발사였던 정주영 씨와, 전속 요리사였던 신충진 씨의 글에서 노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친구들에게 자신을 노사모라 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된 후에 탈퇴했다고 변명했었던 서민 교수처럼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자랑스러워 하지 못했던 글쓴이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글과는 사뭇 다르지만 카피라이터 정철 씨의 '날개에 대한 지나친 고찰'이나 평론가 김갑수 씨의 '나쁜 취향'처럼 독특한 글에서조차 행간에서 그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스물두 명의 글쓴이들이 그리워하는 노무현 이라는 인물, 그에 대한 그리움도 스물두 가지입니다.





그들이 그리워 하는 그의 한 마디


22명의 이야기가 모여있지만 유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 마디를 그리워 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김형민 PD는 노무현 후보가 장인의 이념에 대한 공격을 당했을 때 대답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한 마디를 그리워합니다.


"그럼 장인이 빨갱이라고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

"대통령 후보를 그만두더라도 아내를 지키겠다."는 순애보의 주인공을 어느 목석 같은 여자인들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나는 그날 노무현의 연설을 순애보의 절절함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구비하지 못했던 용기의 현현으로 기억한다. p. 77. 김형민 - 귀신은 살아있다  


노경실 작가는 그가 자주 사용한 "내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라는 한 마디를 그리워 합니다.


"노 대통령이 자주 쓴 말 중 한 구절은 "내가 직접 챙기겠습니다."였다. 그는 '대통령 당선자'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임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자주 '직접 챙기겠다'고 우리에게 선언하거나 하소연했다. 그런데도 기다려 주지 못한 사람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위해 직접 땀 흘릴 것이라고 했으나 기다려 주지 못한 마음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이루기 위해 직접 싸우겠다고 했는데도 기다려 주지 못한 가슴들." pp. 68-69. 노경실 - 다시는 울지 말자  


번역가 박병화 씨는 그의 복지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한 마디를 그리워 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진보의 길은 무엇이었을까? 상식과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간단하다. 그가 적절히 예를 들었듯이, '기다리던 사람들을 비좁은 버스에 같이 태우고 가는 것'에서 일단의 의미를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p.227. 박병화 - 나도 좀 타고 가자 




불의에 공분하는, 약자들의 변호인으로서의 노무현


최근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변호인>이 대상(송강호), 작품상, 신인감독상(양우석) 등 3관왕을 휩쓸며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불의에 공분하는 그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쓴 글들도 많습니다. 조국 교수는 국민학교 6학년 때 전교학생회장에 도전했으나 교문 앞에서 딱지를 뿌린 후보에게 패하고 맙니다. 어린 시절에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조국 교수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본능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영화에 공감했던 이유도 본능 때문이 아닐까요.


한편, 유시민 전 장관은 학생운동 시절 자신을 변호해주었던 변호인들을 추억하면서 자신의 공직 생활을 돌이켜 봅니다.


"누군가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했다면, 당연히 공분을 느끼고 그들의 변호인이 되어 주어야 한다. 훌륭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든, 주장과 행동이 내 맘에 들든 들지 않든, 그것이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그 당연한 이치를 망각했다. (중략) 나는 '힘 있는 자리'에 있었을 때, 더 많은 억울한 사람들의 변호인이 되어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치에 뛰어들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것만은 크게 후회한다." p.95. 유시민 - 변호인이 된다는 것 


우리는 인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그간 사회에 뿌리 깊었던 불공정을 없애주고, 그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만큼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약자들을 대변해 줄 것을 너무나 강렬히 소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그를 기린 영화 <변호인>을 관람하고 그에 대한 칼럼 원고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 기고한 정여울 작가는 익명의 '관계자'로부터 '게재 불가'를 통보받습니다.


'좀 더 밝은 내용의 작품, 청소년들에게 맞는 작품'을 선정해 달라는 것이 '관계자'의 요청이었습니다. 지기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관계자'라는 명목 뒤에 숨어서 타인의 글쓰기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변호인>이라는 영화 안에 담긴 그 무엇이 그 사람을 불편하게, 혹은 두렵게 했던 것일까요. p.15 정여울 - 오랜 자폐를 털고 中


보수정권의 정책 실패,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


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보수정권은 경제성장과 기초연금 등의 장밋빛 공약을 제시하였지만 정작 세계적인 금융위기 파도에 휩쓸려 힘을 쓰지 못했고, 연금정책은 참여정부의 안에 비해 장기적으로는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간첩 증거 조작설이나 국정원과 사이버 사령부 등 정보조직의 대남 심리전 등 각종 의혹도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참사 그 자체에 슬퍼했고, 배만 잃고 끝날 수 있었던 사고를 크게 키운 선사와 선원들에게 경악했으며, 효율적인 구조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무수한 의문점만 남긴 해경과 정부의 대처에 분노하였습니다.


지금은 철거 된, 광주 시내 한 거리에 걸려있던 노란 현수막.

 


참여정부 시절에 만든 재난 매뉴얼을 지휘 통제할 조직인 NSC를 없앤 이명박 정부, 그리고 안전을 중시하면서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꾸었지만 오히려 안전과 관련한 업무를 여러 부처로 흩어놓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실망이 쌓였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리며 거리에 걸려 나풀대는 현수막들과 한때 각종 모바일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대체한 리본의 색깔이 그가 떠오르는 노란색이라 더욱 그럴까요? 하수상한 세월에 더욱 그가 그립습니다.


드라마 작가 김윤영 씨는 어느 현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과 대답을 듣습니다. 


"착한 개와 나쁜 개가 싸우면 어떤 개가 이길까요?" (중략)

"나쁜 개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한 개가 이깁니다. 이기고 싶으면 강해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달리 질문해보겠습니다. 한 인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불가능하다였지만, 세상은 나 하나로 구성된 것이 아니니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욕심이라 평합니다. 하지만 '내가 바뀌면'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답니다. 마치 선글라스를 쓰고 세상을 바라보다가 이를 벗어 세상의 빛깔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나의 시각이 바뀌면 나의 행동이 달라지고, 주위의 반응도, 주위의 상황도 바뀌며, 결국 세상이 바뀔 수 있게 되는 작은 행동이 되는 셈입니다. pp.29-30, 정여울 - 어떤 개가 이길까? 中


세상은 강한 자만이 승리합니다.하지만 약하디 약한 한 인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6.4 지방선거에서 우리 '스스로가 바뀌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의 빛깔이 달라질 것을 기대합니다. 국민들의 분노와 올바른 정치에 대한 열망이 '그들'에게도 전해지기도 기원해 봅니다. 이 생각들을 하면서 문득 그가 그립습니다.

 

그가 그립다 - 10점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생각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