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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경제경영

탐욕에 물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망을 찾다

[서평] <인류 최악의 미덕 : 탐욕> (스테파노 자마니 씀 / 윤종국 옮김 / 북돋움 / 2014.06 / 14,000 원)



여러분은 칠죄종을 아시나요? 흔히 7대 죄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용어는 가톨릭에서 성경에 규정된 7가지 죄의 씨앗을 말하며 국내 천주교에서는 공식 명칭으로 '칠죄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만(Pride), 탐욕(Greed), 시기(Envy), 분노(Wrath), 나태(Sloth),  식탐(Gluttony), 그리고 색욕(Lust)로 구성된 이 죄악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혹은 아직도 겪고 있을 감정이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고 특유의 상징성 때문에 많은 대중문화 작품에서 차용해서 사용된 바 있습니다.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세븐(1995)>에서 범인은 이 7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며, 일본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는 7가지 죄악을 상징하는 동명의 호문쿨르스라는 생명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칠죄종'을 모티브로 독특한 시리즈가 이탈리아에서 기획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인문학 서적 출판사인 물리노(Mulino)에서 '칠죄종 시리즈' 중 첫번째 책으로 '탐욕'이라는 키워드로 '경제사'를 분석하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 책이 국내에 번역되었습니다.





탐욕은 어쩌다 인간을 위협하는 최악의 미덕이 되었나?


종교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주제어와 약간 이질감이 있게도 이 책의 저자 스테파노 자마니는 협동조합 전문가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탐욕'을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경제학자들에 의해 과소평가되고 있는 탐욕이라는 악덕의 고정관념을 바꾸고자 합니다.

저도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어색하게 느꼈듯이, 탐욕은 주요 악덕 중에서 가장 '경제적'인 악덕에 해당하지만, 경제학 분야에서 이 탐욕 현상을 이해하려는 이론적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 입니다.


두 번째로, 탐욕의 의미가 고대 후기부터 현대까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고찰합니다.

고대에는 악의 뿌리로 규정되었던 탐욕이 수도생활이 널리 중세 초기에는 교만보다 덜 중요한 악덕으로 치환됩니다. 신만큼 소유하려는 '탐욕'보다는 신과 대등하게 존재하려는 '교만'이 더 악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죠. 


칠죄종에 서열을 매기는 데는 당연희 교부들의 공헌이 컸다. 성경 해설가 및 주석가들은 기본적으로 다음 두 구절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모든 죄의 시작은 오만이다."(집회서 10장 13절)라는 구절은 교만을,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6장 10절)라는 구절은 탐욕을 가장 큰 악덕인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32p)


대에 상업이 대두되고 상인 세력의 영향력이 커져가자 탐욕은 자기자신을 돌보는 덕목이자 자본의 축적을 장려하고 공동체 발전에도 기여하는 미덕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20세기에 이르러 인류의 무절제한 욕심과 도덕적 타락의 원흉을 '탐욕'으로 규정하면서 다시금 탐욕은 최악의 악덕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악덕의 세속화'라는 주제를 제시합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고찰이 아닌 '탐욕'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원인'에서 발생하며 이를 사회문화적, 병리학적으로 고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탐욕에 물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망을 찾다


책의 초반부는 가톨릭 교계의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중후반부로 넘어가면 흥미로운 대목들이 나옵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긍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탐욕'이 18세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미덕으로 치부되면서 도덕성의 잣대가 아닌 효용성의 잣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하게 됩니다.


기존의 관념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고리대금과 같은 행위도 자본가의 기회비용에 대한 합당한 대가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고, 이 논리가 자리잡는 것을 방치한 결과 우리 사회는 1929년 세계 대공황,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저자는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가장 '경제적'인 악덕인 탐욕에 대한 경제학계의 몰이해를 꼽았습니다. 합리성만 추구한 나머지 탐욕의 위험을 간과하고 오히려 부추긴 결과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경제학은 합리성, 효율성 뿐만 아니라 이치에 맞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가 없이 주는 선물은 일방적인 행위로 끝나지 않고, 상호성이라는 새로운 관계 고리의 포문을 연다. 말하자면, 대가 없는 선물은 사람 사이의 유대를 만들어준다. 이때 타인에 대한 관심은 유대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다.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는 이런 개념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서로 운명의 끈으로 묶여야 할 이유를 더는 찾지 못했을 때, 즉 ‘상호 존재’의 개념이 사라졌을 때 사회는 붕괴한다고 말이다. (에필로그, 211p)


하지만 저자는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NGO와 같은 여러 형태의 기업과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사회가 탐욕에 완전히 점령되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남에게 선물을 줄 수 없는 '탐욕가'들이 절대 할 수 없는 부의 '나눔'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아직 이 사회에 남아있기에 '상호성'을 기반으로 서로 주고 받는 선물이 앞으로의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경제 발전 동력이라는 것 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수많은 '을'들이 '갑'의 탐욕을 이겨내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나가고 우리 사회의 낮은 곳에 빛을 보내주는 사회적 기업과 NGO 등의 기관들이 여기저기서 힘을 쓰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전문가가 '칠죄종'이라는 종교적 개념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풀어 쓴 독특한 책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인류 최악의 미덕, 탐욕 - 8점
스테파노 자마니 지음, 윤종국 옮김/북돋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