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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기타 해외소설

엉뚱한 할배와 함께 하는 현대 세계사 산책 -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임호경 역 / 열린책들 출판 / 출간일 2013-07-25.




스웨덴의 신인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데뷔작이자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 무려 100만부를 팔아치운 히트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어보았습니다. 독서인구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다만 단순히 수치상으로 우리나라 인구를 4500만으로 잡으면... 무려 500만부가 넘게 팔린 셈인데... 정말 대단하죠? 우리에겐 익숙치 않은 러시아문학 등을 충실하게 번역해오던 열린책들에서 번역한 스웨덴 소설입니다.


인터파크 i-point가 책 한권 사볼 정도로 쌓여기에, 인터파크 e-book을 구매하고 여러 회사의 어플을 설치 가능한 전자책 단말기 교보 SAM으로 정독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폰트가 인터파크 비스킷앱에 탑재된 '인터파크 고딕'인데 동글동글한게 참 독특한 폰트죠? 주로 명조나 바탕체계열의 폰트를 선호하는데 인터파크 앱이 다른 폰트를 지원하지 않기도 했고, 처음 접했지만 제법 가독성이 좋은 폰트라 읽어봤는데 꽤 괜찮더군요 ^^


소설은 한 인물의 현재와 과거, 두 가지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다른 시점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알란 칼손 이라는 이름의 노인은 자신의 2005년 5월 2일 월요일, 자신의 100세 생일을 맞이해 준비된 양로원의 생일 파티를 피해서 소설의 제목과 똑같이 '창문을 넘어 도망'치게 됩니다.


그는 자유로운 자신을 규칙 속에 옭아매는 양로원에 다시 돌아가기 싫어서 버스터미널로 향하는데 우연히 나사빠진 얼간이들로 구성된 '네버 어게인'이라는 갱단의 한 조직원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커다란 트렁크 하나를 맡기게 되지요. 충동적으로 양로원을 탈출했듯이... 알란은 또 뚜렷한 이유 없이 즉흥적으로 청년의 트렁크를 훔쳐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이 요금으로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달라는 부탁을 버스기사에게 한 채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트렁크 안에는 갱단의 어두운 자금 5천만 크로나(우리 돈으로 약 81억원에 해당)라는 거액이 들어있었다는 점이죠;;;;


소설은 여기서부터 두 가지 갈래의 큰 스토리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현재의 시점에서, 트렁크를 가지고 정처 없이 떠도는 알란 칼손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사귀며 여행하는 사이, 그들을 뒤쫓는 덜떨어진 갱단 '네버 어게인'의 추적에 더불어, 마을에서 한 노인이 실종된(혹은 도망친) 사건으로 가볍게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들이 알란 칼손 일행의 어처구니 없는 모험 속에서 우연히 발생한 여러 사건들 때문에 전국에 수배를 내리고 알란 칼손 일행을 체포하기 위해 수사망을 좁혀가는 부분.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시점으로, 알란 칼손이라는 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1905년 알란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세계 현대사의 대사건 사이사이 등장하는 알란을 만나는 부분입니다.


두 갈래로 나뉘었던 이야기는 알란 칼손 일행의 모험이 끝나는 2005년 6월 16일 목요일에 하나로 합쳐지고 소설은 왜 그가 2005년 5월 2일 월요일에 양로원에서 탈출하게 되었는지를 다시 보여주면서 끝이 납니다.





한 달 반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엉뚱한 일당의 모험 이야기도 굉장히 유쾌하게 그려져있지만, 더 재미난 점은 소설의 절반 분량을 담당하고 있는 알란 칼손이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두 갈래의 이야기는 소설의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균형있게 진행되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알란의 과거 이야기가 워낙 굉장한 이야기들이 많은지라 뒤로 갈수록 소설의 균형 자체는 크게 깨졌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물론 이 정도는 작가도 의도한 부분이겠죠.)


소설의 초반 알란의 어머니가 말하는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음이 이야기를 전개되는 동안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지켜보고 나서는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1936년 스페인 내전


1943년 미국 로스앨러모스에서 원자폭탄 개발


1946년 중국 국공 내전 / 쑹메이링 이야기


1953년 한국전쟁


1963년 발리 아궁 화산 폭발


1968년 프랑스 68혁명


전후 냉전 체제 고착과 소련 붕괴



등등 크나큰 현대 세계사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할배가 벌이는 엉뚱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이불 속에서 큭큭거리며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작가의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상상이 가미된 묘사가 가끔은 너무 과감해서 소설의 재미를 위해 너무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희화화 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웃자고 만든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 겠죠?


작중에서 알란이 스웨덴 수상을 처음 만나고 생각하는 <어쨋든 (수상은) 둘 중 하나이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삶의 경험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란 좌파 아니면 우파를 고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분에서 논쟁만 가득한 정치에 대한 풍자와 현실을 살아가는데에는 사실 그런 양분법이 별 필요 없다는 비판도 은연중에 하는 모습에서 작가의 유쾌한 모습을 얼핏 훔쳐본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할 길이 없기도 했기에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참 이국적이었는데요, 가장 이질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작중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이름도 서구권에서는 참 읽기도 어렵고 왜 대부분 사람들의 성씨가 Kim인지도 의아하겠지요? ^^*)


대충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알아왔기 때문에 소설을 즐기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소설이 풍자하는 세계사 이야기를 자세하게 알고 보는게 이 소설을 즐기는데는 더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저도 스페인 내전 이야기나, 프랑스의 68혁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포스팅을 마치고 관련한 책들도 뒤져보고 공부해서 후속 포스팅을 몇 번 발행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혹시 아직 책을 안보시고 이 포스팅을 먼저 접하신 분들이라면 위에 제가 나열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소설을 보시기 전에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습득하고 보시면 훨씬 재밌게 이 소설을 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외에도 제가 책을 읽으면서 처음 접한 것들이라 메모한 부분은


부활절 장식 달걀 공예 기술자 - 카를 구스타포비치 파베르제

핀란드 작가 - 아르토 파실린나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에서 유래)


등이 있는데요 ^^ 이런 재미난 소설을 읽으면서 앞으로 또 읽어야 될 읽을거리들도 제공받으니 참 알찬 독서가 된 기분입니다.


책 자체의 편집에 있어서 아쉬웠던 점은 소설에 등장하는 주석들을 전부 미주로 처리해서 일반적인 독자라면 주석 없이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을 찾기 위해서 책의 제일 뒤 까지 찾아 넘겨봐야 한다는 점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흐름이 자주 끊기게 만드는 안좋은 부분이라고 보여집니다. 충분히 각주로 처리해서 페이지마다 해설을 달 수도 있었을텐데요...


책 제목이 흥미로워서 가벼운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었지만 현대 세계사의 여기 저기를 훑고 지나간 듯한, 왠지 역사 공부한 듯한 기분도 들고, 작가 특유의 여기저기 숨어있는 유머 코드가 저랑 너무 맞아서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후속작도 굉장히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10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