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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일본소설

하루키 다운 상징의 향연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多崎つくる)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스무 살 생일을 맞이했지만 그 기념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는 이유를 잘 모른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 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p.7



음울한 시작...

하루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노르웨이의 숲>(국내에는 상실의 시대로 더 유명하죠)이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그리고 최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1Q84>...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대부분 방황하고 고뇌하는 청년기의 모습을 주요 테마로 다루거나,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일정부분 할애를 해왔지만


다짜고짜 죽음만을 생각한 주인공을 독자에게 툭 던지는 불친절함을 보여주진 않았었습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욕심이 하루키를 변하게 했을까요? 그간 서구권 번역본에서는 성애장면의 묘사를 대폭 줄이고 번역에도 공을 들였다는 소문이 왕왕 있었지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르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색채가 없는...)는 이전까지와의 작품과는 다른 맛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하루키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성애장면은 이번 작품에서도 제법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확실히 <노르웨이의 숲>이나 <1Q84>에 비해서는 현저히 줄어들기도 한 점은 너무 상업적이고 가볍다는 평단의 지적과 자신의 작품관에 대한 절충으로 보여지기도 하네요.


재즈에 대한 수준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음악에 대한 왕성한 관심으로 작품 여기저기에 익숙치 않은 작품들을 주요소재로 활용하곤 하는데 <1Q84>에서는 원래 기획되었던 2권까지의 분량을 살펴보면 바흐의 클라비어 작곡집의 평균율에서 착안한 아오마메와 덴고과 주고받는 12세트의 장 구분으로 치밀하게 계획하고 작품을 구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했었던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는 곡을 모두 찾아보게 만들었었죠...


이번 <색채가 없는...>에는 장 구분도 없고 다소 쌩뚱맞은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찾아왔지만...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끌어들이고, 색깔을 주제로 그가 만들어 낸 5명의 독특한 캐릭터와 그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징을 활용해, 참 재미있기도 하고 그가 지금껏 이룩해 온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정리하고자 하는 느낌으로 글을 썼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통통튀는 미도리나

<1Q84>의 신비로운 후카에리와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를 묘사하는 실력에서는 언제나 수많은 독자를 사로 잡아왔던 하루키.


1. 그룹을 형성하고 이유도 모른체 그룹에서 제거되기까지

2. 상처에 고통스러워 하다 치유를 시작하는 대학생활

3. 사라를 만나고 그녀의 권유로 순례를 시작하는 부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지는 이번 작품은 미스테리함과 모호함

그리고 이름에 색깔이 들어간 4명의 등장인물들과 이름에 색깔이 들어가지 않은 주인공.

이를 상징으로 적절히 활용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말에 잠깐 햇빛 잘드는 커피숍 창가에 앉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폈는데, 저는 너무 몰입해서 그자리에서 주욱 다 읽어버렸던 작품입니다.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간결한 스토리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몰아치는 듯한 소설...


아직까지 하루키를 접하지 않으신 분들도 '첫 하루키'로 접하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되고, 혹 그의 대표작을 먼저 읽고 접하고 싶다면 위에 언급한 중편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노르웨이의 숲> 정도를 읽고 보셔도 좋을 작품입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