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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희곡/르포르타주

조지 오웰이 경험한 밑바닥 사람들의 웃픈 이야기

[서평]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1933)


[조지 오웰] 동물농장,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 김기혁 역 / 문학동네 / 출간일 2010-05-17. / George Orwell / Animal Farm·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조지 오웰(본명 : 에릭 아서 블레어 / Eric Arther Blair)은 <버마 시절>(1934)의 배경이 되었던 버마에서의 대영제국 경찰 생활을 1927년에 마친 후 유럽으로 돌아옵니다. 식민지 버마에서 지배층의 위치에 있던 그는 파리로 건너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사회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보냅니다. 그가 파리와 런던에서 5년 정도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겪은 체험을 쓴 르포르타주 형식의 자전적 소설인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1933)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그의 필명으로 출간된 첫 작품입니다. (국내 다른 출판사에서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삼우반, 2008),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세시, 2012) 등의 이름으로도 번역된 바 있습니다.)



직접 뛰어들어 체험한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상


 작품은 파리 콕도르가의 조그마한 여인숙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쓰려는 것은 가난 그 자체이다. 나는 이 빈민가에서 처음으로 가난을 만났다. 지저분하고 괴이한 삶으로 이루어진 이 빈민가는 처음에는 가난의 실제 교육 현장이 되어주었고, 다음에는 내 경험의 배경이 되었다. - 1장 中


영어 과외나 언론사에 투고한 글에 대한 원고료로 근근히 살아가던 조지 오웰은 어느 날 여인숙을 통째로 털어버린 이탈리아인 도둑 때문에 주머니에 있던 47프랑을 제외하고 모든 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따라지 인생이 시작됩니다.


권태라든가 비열할 정도로 쩨쩨한 것, 굶주림의 시초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더불어 가난이 지닌 커다란 장점, 즉 가난은 미래를 말살해버린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중략) 자신이 마침내 진정 밑바닥까지 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안도감, 아니 거의 쾌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 3장 中


하루 하루를 마가린 바른 빵 한 덩이와 저질 스프로 때우다가 그나마 있던 돈마저 다 떨어져가니 마냥 굶기도 하고 전당포에 옷을 맡기기도 하고, 이전에 안면이 있던 러시아장교 출신인 보리스라는 친구와 함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결국 한 호텔의 접시닦이로 일을 하게 되는 조지 오웰. 하지만 그 곳의 근무환경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너무나 불결한 위생상태와 고된 노동 그리고 열다섯시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근무시간은 오웰을 지치게 합니다. 그는 접시닦이 생활을 청산하고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런던에서도 밑바닥 인생은 계속되고 그는 이제 부랑자 구호소를 전전하며 생활합니다. 런던의 부랑자 구호소들은 한 달 이내에 같은 구호소를 찾아오게 되면 유치장으로 보내 구금을 시켜버리기 때문에 부랑자들은 다른 구호소를 찾아 여기저기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웰은 이를 직접 체험하며 이 제도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너무나도 사실적인 밑바닥 생활 체험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


밑바닥에서의 고된 삶을 보내는 사람들이 고통에 찌들어 쓸쓸한 삶을 살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막상 오웰의 르포르타주 안의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과 큰 차이 없이 웃고 떠들며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게 놀라웠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된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상입니다.


굶주림은 사람을 척추도, 두뇌도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하는데 꼭 독감 후유증이랑 비슷하다. 해파리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피를 다 뽑아내고 대신 미지근한 물을 넣은 것 같기도 하다. - 7장 中


먹음직한 음식은 시간 엄수라든가 그럴듯해 보이는 외양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호텔이나 음식점에서는 불결함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 14장 中


다른 이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이 아닌 작가가 직접 겪은 일들이니만큼 그 생생함은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제 맛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웰은 단순히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부랑자 구호소의 하루만 재워주고 한 달 동안 같은 곳을 방문하지 못하게 하는 형식적인 구호 대책을 비판하고 구호소마다 텃밭을 기르고 부랑자들을 이용해서 이를 관리하게 하는 방식의 부랑자의 노동력도 활용하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음식의 질도 높이려는 대안도 제시합니다. 또한 파리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접시닦이 일들을 묘사하면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합니다.


그들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판에 박힌 생활에 사로잡혀 있다. 만약 접시닦이도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오래전에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처우개선을 위한 파업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 22장 中


한 대통령 후보자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를 들고 국민들로부터 대단한 호응을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조지 오웰이 이와 같은 고된 노동을 경험했던 때가 1920년대였지만 아직도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은 그리 많이 나아지지 않았군요. 조지 오웰의 작품들을 읽을 때는 유쾌한 문체와 생생한 묘사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서 우리가 사는 지금 현재를 살펴보면 그가 문학을 통해서 고발하고 경고했던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너무나도 슬퍼집니다.


본 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14.02.0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4684)


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반양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