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을 남긴 날짜를 확인해보니 2014년 8월 3일이더군요.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습니다.

 

20대의 저는 신화 속 이야기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뜨겁게 떠들기를 좋아했습니다. '미미르의 샘'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어놓고, 세상의 지혜를 길어 올리겠다며 호기롭게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저는 글자 대신 숫자를, 이상 대신 현실을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 한쪽 눈을 바쳤던 오딘처럼, 저 또한 현실이라는 대가를 치르며 조금은 다른 종류의 단단함을 배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시, 멈춰있던 샘물을 길어 올리려 합니다. 과거의 글들이 날 것 그대로의 열정이었다면, 앞으로의 글들은 활자와 영상, 그리고 데이터 속에 숨겨진 맥락을 차분히 읽어내는 기록이 될 것입니다.

 

 

- 어린 시절 크로스체크 없이 올렸던 글들의 잘못된 사실 관계, 잘못된 해석 들은 시간을 들여 고쳐나갈 예정입니다.

- 올해 상반기에는 다시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하반기 부터는 주기적인 연재를 다시 해볼 생각입니다. 다만 이전처럼 신화를 직접 다루기 보단 좀더 현실적인 주제를 다룰 가능성이 높습니다.

- 공백기간 동안 데이터, AI 그리고 금융에 대한 관심이 늘었습니다. 그래도 독서는 아직도 변함없이 좋아합니다.

 

긴 잠에서 깨어난 미미르의 샘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시, 읽고 씁니다.

지난 시간에는 <콜 오브 듀티 : 고스트>에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의 요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신의 지팡이'라는 구상 단계까지 갔었던 실제 무기에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들이 붙어있는게 참 독특했었죠?


이번 주 부터는 아직 다루지 못했던 신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시인들과 문학의 신인 브라기(Bragi) 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들의 혀, 크바지르(Kwasir)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연재


29. 거인왕 가이뢰트의 계략

30. 오딘신과 토르신의 말다툼

31. 토르신과 난쟁이의 지혜 대결

32. 북유럽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는 게임들(1)

33. 북유럽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는 게임들(2)




아제 신과 바네 신들의 전쟁이 막 끝나고 평화조약을 맺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딘 신은 양측 신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큰 함지에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는 신이라면 이 함지에 침을 뱉으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들은 침을 뱉었고 이렇게 모인 침을 가지고 인간 남자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신들은 그에게 크바지르(Kwasir)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여기에 그의 혀는 오딘 신이 직접 만들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신들의 순수한 침이 한 인간을 만들고, 그 혀는 오딘 신이 만든 특별한 존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죠.





신들의 혀인 크바지르는 아주 현명하고, 지혜로운 말을 할 줄 알고,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해서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중간계를 돌아다니며 아제 신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현명하게 답변하며 중간계의 인간들을 가르치는 신들의 훌륭한 대변인이 된 셈이었죠.


그러던 어느날 오딘의 까마귀들이 크바지르의 죽음을 오딘 신에게 알립니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옥좌에서 그의 죽을을 지켜본 오딘 신은 사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나그네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챙이 넓은 모자로 애꾸눈을 가리고, 망토를 걸친 오딘 신은 중간계에 다다라 사태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사악한 난쟁이 피얄라르(Fjalar)와 갈라르(Galar)가 크바지르를 초대해 놓고는 칼로 찔러 죽여버린 것이었죠. 준비해 놓은 항아리에 크바지르의 귀중한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받아놓고는 꿀을 섞어서 아주 맛이 좋은 꿀술을 빚었다고 합니다.


신들의 침으로 만든 크바지르의 피였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지혜의 에센스였기에 이를 이용해 만든 술은 엄청난 시의 음료가 되었습니다. 이를 마신 신이나 인간은 누구나 뛰어난 시인이 될 수 있었고 신과 인간의 운명을 노래하는 시를 쓸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때문에 이 이야기가 기록된 <에다>의 모든 시들은 이 크바지르의 피로 빚은 꿀술을 마신 시인들인 셈이지요.



여튼 난쟁이들은 이 꿀술을 세 개의 항아리에 나누어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 누군가 크바지르의 행방을 물으면 지혜가 넘쳐 그만 거기에 빠져 죽었다고 둘러대곤 하였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이 난쟁이들은 길링(Gilling)이라는 거인과 그 아내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첫 날 거인들을 잘 대접한 난쟁이들은 다음날 길링에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바다를 모르는 길링이었지만 친절한 난쟁이들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아내는 집에 남겨두고 바다로 떠납니다. 


그런데 이 난쟁이들은 바다로 나아가서는 배를 뒤집어서 헤엄을 치지 못하는 길링을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리고서는 다시 배를 뒤집어 난쟁이들만 집으로 돌아와 길링의 아내에게 남편의 죽음을 전합니다. 그리고서는 슬픔에 가득찬 아내에게 남편이 죽은 바다라도 보겠냐며 피얄라르가 밖으로 유인했고, 따라나서는 길링의 아내를 갈라르가 문위에서 맷돌을 집어던져서 또 아내마저 죽이고 말았습니다.


<에다>를 썼던 시인들이 마셨던 꿀술이 조금 부족해서인지 난쟁이들이 어째서 이 거인들을 죽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이후의 이야기는 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은 길링의 아들(조카라고 기록된 문헌도 있습니다.) 주퉁(Suttung)이 이 소식을 듣고는 피얄라르와 갈라르를 바다로 끌고가 암초 위에 묶어버린 것이지요. 밀물이 들어오면 꼼짝없이 익사하게 생긴 난쟁이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준다면 소중한 꿀술을 주퉁에게 주겠다고 애걸복걸하였습니다. 주퉁이 난쟁이들의 애원을 받아들여 결국 귀중한 꿀술은 거인 주퉁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각종 삽화들을 보면 거인의 크기와 신들의 크기도 매우 차이가 나고, 신화 속 여러 요소들을 검토해보면 대충 아제 신들과도 9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신들보다 작은 난쟁이들이 길링과 그의 아내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하기도 합니다.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는 신들의 혀라는 크바지르의 설정이 인상적이었는지 이 이름은 노르웨이의 검색엔진의 이름으로 차용되기도 하였습니다. (http://www.kvasir.no/)






침을 모아서 사람을 만들고, 또 이 사람을 죽이고 피를 모아서 꿀술을 만들고.... 어째 더럽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한 이야기지요? 북유럽 지대의 긴긴 밤을 지새우며 후대로 전해진 이야기의 특성상 잠을 쫓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도록 잔인하기도 가끔은 외설스러운 면도 섞어주어서 흥미를 더 돋군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우리가 막장 드라마에 열광하듯 말이죠. 이 이야기의 후반부는 다음 시간에 마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는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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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post.naver.com/mimisbrunnr



참고문헌

안인희, 2011,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웅진지식하우스.

강응천, 1998, 바이킹 전사들의 북유럽 신화여행, 마루(금오문화).



http://en.wikipedia.org/wiki/Kvasir

http://ru.wikipedia.org/wiki/%D0%9A%D0%B2%D0%B0%D1%81%D0%B8%D1%80

http://en.wikipedia.org/wiki/Mead_of_poetry

http://en.wikipedia.org/wiki/Suttungr


http://kvasir.no/





본 포스트에 사용된 삽화 중 별도 표기한 삽화를 제외한 모든 삽화의 출처는 위키백과이며, 모든 저작권은 위키백과에 있습니다.


[서평] <문화 유전자 전쟁> (칼레 라슨 외 씀 /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06 / 28,000 원) 


뉴스에서는 매일 주가지수를 보도하고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며 우리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전문가를 초대해 진단을 듣습니다. 전문가들은 수학시간에나 보던 포물선 모양의 신기한 그래프와 숫자로 가득한 통계자료를 들고나와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각종 용어들을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깝게는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그 이전에도 여러 번 발생한 경제적 사태들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저기요, 교수님!

2008년 금융 시장 붕괴가 일어났을 때 교수, 정책 입안자, 연구소 할 것 없이 불의의 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위기가 임박했는데 어떻게 백에 한 명도 예측하지 못할 수가 있죠?


신뢰성이 이만큼 땅에 떨어진 학문이 또 있나요? 교수님, 그런데 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죠? 어떻게 전과 똑같은 내용을 가르칠 수 있죠? 우리 대학의 교과 과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본문 81p)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시위를 처음으로 제안하고, 이 시위를 전 세계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칼레 라슨이 2012년 출간한  <문화 유전자 전쟁>에서는 점령의 대상으로 '경제학'을 꼽았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논리에 도전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독특한 책 <문화 유전자 전쟁>을 소개합니다.





화려한 이미지와 사진으로 가득한 독특한 경제학 서적


430여 페이지의 두툼한 이 책을 처음 펼첬을 때의 느낌은 기존의 전공서적이나 다소 두꺼운 교양서를 읽는 느낌과는 사뭇달랐습니다. 저자가 만든 상업광고를 패러디하는 패러디광고 전문 비영리 격월간지 애드버스터스(Adbusters)가 공저를 한 특징인지 여성잡지를 보는 듯 시각적 충격을 주는 다양한 삽화와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어떤 페이지는 다단으로 편집되어 있고, 또 어떤 페이지는 박스 기사 형태로 편집되어 있으며, 그저 하나의 사진만 가득하고 한 줄의 강렬한 메세지만 가득한 페이지도 존재합니다. 책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난잡해보이기만 한 이 편집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책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잘 몰라서 그저 올바르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던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가득한 책입니다.


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서 단순히 경제학이라는 그라운드 안에서만 싸우지 않습니다. 철학, 소비자 심리학, 심리학,생태학 등 다양한 시선을 반영해 현대 경제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지금이라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문화 유전자(meme)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로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요소를 뜻합니다. 유전자(gene)처럼 후대 세대로 전달이 되는데 이 매개체로 다양한 문화 현상이 사용되는데, 저자는 금융자본주의와 소비주의와의 문화 유전자 전쟁이 필요하며 이 전쟁의 최전선으로 현대 경제학의 점령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이 낳은 극대화의 위험


책이 가장 경고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이 낳은 비극은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극대화로 인한 지구 환경의 파괴입니다.


경제학은 극대화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한계 안에서 효용을 극대화하고 성장을 극대화하고 소득을 극대화하고 생산을 극대화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자본가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고삐 풀린 극대화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57p)


이처럼 경제학이 추구하는 극대화는 지구 환경이 인류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자원의 수준을 넘어서는 소비를 유도하며 이는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이와 같은 소비세태가 지속될 경우 인류와 지구는 한 세대를 더 버티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합니다.


50년 안에 세계 인구가 90억이 될 텐데 전 인류의 1인당 자원 사용량이 부자 나라들과 같아 진다면 연간 자원 생산량은 현재의 약 8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90억 인구가 미국식 식사를 한다면 약 4,500만 제곱킬로미터의 농지가 필요하지만 지구상의 전체 농지 면적은 1,400만 제곱킬로미터 밖에 안된다. (본문 211p)


그래서 저자는 <진짜 비용>이라는 개념의 도입을 주장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지금은 자동체 부과되는 세금, 유지비, 그리고 기름값 정도만 지출하면 되지만 실질적으로 들어가는 차가 내뿜는 탄소로 인한 환경비용, 도로를 건설하고 보수하는데 드는 비용, 교통사고로 초래되는 의료비용, 자동차가 만드는 소음과 불쾌감, 그리고 주요 유전과 송유관을 보호하는데 들어가는 군사적 비용까지 모두 계산을 하고 합산을 하자는 겁니다.


<경제 활동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모두 계산하고 반영하여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생태적 진실을 말하는 세계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


이와 같은 <진짜 비용>이 부과되면 당연히 자동차 값은 1억원 이상, 주유하는데 드는 기름값도 1회에 30여 만원이 넘어갈 것으로 예측되지만 미래 세대와 소비주의 사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에 비용을 전가하지 말고 우리 세대가 이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저자의 논리가 아주 모순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안 경제학이 경고하는 주장들이 너무 과장되고 현실성이 떨어지니 주류 경제학을 믿고 따라가야할지, 혹은 주류 경제학이 주는 달콤한 혜택에 만족하고 미래에 닥칠 비극을 무시해선 안된다는 대안 경제학의 경고를 받아들여야할지 이제 우리 세대는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에 닥친 것 같습니다.

 

문화 유전자 전쟁 - 10점
칼레 라슨 & 애드버스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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