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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시/수필

노예 12년

[서평]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2014)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 / 오숙은 역 / 열린책들 출판 / 출간일 2014-02-22 / 12 Years a Slave (1853년).


최근 영화 <노예 12년>의 개봉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노예 12년>이 무려 5개의 출판사에서 국내 출판시장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새잎 출판사를 시작으로, 펭귄클래식코리아, 열린책들, 글항아리, 마지막으로 더클래식까지 말이죠.

이 중에서 펭귄클래식코리아는 영화사와 공동 마케팅을 실시해 아예 영화포스터를 그대로 사용한게 특징이라면 특징이고, 더클래식은 늘 그래왔듯 영문판을 껴주며 책의 성격을 실용서로 신고하고여도서정가제를 우회해 출시와 동시에 50% 할인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화제의 책 <노예 12년>을 열린책들 판본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억울한 12년의 노예 생활을 기록한 수기


책을 쓴 저자 솔로몬 노섭은 당시 노예제를 채택하지 않던 미국 북부 뉴욕주에서 자유시민으로 살아가다가 납치되어서 남부에 팔린 흑인입니다. 이후 무려 12년 동안이나 남부에서 노예로 생활해가던 중 다행히 그가 도움을 준 백인을 통해서 북부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덕분에 구조가 되었고 그 간의 기록을 책으로 펴낸 수기가 바로 <노예 12년> 입니다.


<노예 12년>이 출간되기 바로 직전에 출간 된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아저씨의 오두막> 덕분에 당시 미국 사회에 노예제도와 흑인 인권 유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점이기에 직접 참상을 기록한 실화 수기가 출간되어서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이나 다른 흑인 노예 제도를 다룬 소설들을 의식한 부분인지 책 여기저기에서 이와 관련한 대목이 등장합니다.


나로선 노예제에 관해서 직접 목격한 것에 한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내가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한 것에 한해서만 말이다. 내 목표는 사실들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것, 내 삶의 이야기를 과장 없이 전달하는 것일 뿐, 소설책 속의 이야기들이 실제보다 더 잔인한 학대나 더 가혹한 속박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 1장. p.26


비천한 삶을 있는 그대로, 또는 그렇지 않게 묘사하는 소설을 쓸 수는 있다-어쩌면 진지한 척 엄숙한 태도로, 무지라는 축복을 자세하게 열거할 수도 있다-노예 생활의 즐거움에 관해 안락의자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 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밭에서 노예와 함께 일하도록 해보라-노예들과 오두막에서 같이 자고-곡물 껍질을 같이 먹도록 해보라. 노예처럼 채찍질을 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짓밟히도록 해보라. 그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갖고 돌아올 것이다. - 제14장. pp.200-201.


당시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은 노예제에 찬성하는 집단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미국의 남부 지역은 노예를 활용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북부와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미국 헌법에 노예 인구의 3/5을 연방 의회 의석수에 반영하도록 하였기에 정치적으로도 북부는 불리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그 건물을 본다면, 그런 혐오스러운 용도로 쓰인다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터였다. 참으로 야릇한 것은, 바로 이 건물이 환히 내다보일 거리에서, 저 높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바로 의회 의사당이라는 것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자랑하는 애국적인 의원의 목소리가, 가련한 노예들의 절겅거리는 사슬 소리와 한데 뒤섞이는 곳이었다. 의회 의사당의 그림자 바로 안에 있는 노예 수용소라니! - 3장 p.47

영화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미 의회 건물을 우리 관객들이 알아보기가 어려웠겠지만, 수기에서는 아주 인상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을 먼저보고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 장면이 얼마나 아이러니가 가득한 장면이었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노예제의 비극은 노예주들도 피할 수 없어

수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저자의 통찰은 노예제는 노예로 부려지는 흑인들만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부리는 백인 노예주들에게도 해악을 끼친 다는 점입니다.

솔로몬 노섭의 첫 주인이었던 윌리엄 포드는 노예들에게 친절하고 훌륭한 기독교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절대 손해보는 일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포드가 친절해서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나는 주인이 노예를 관대하게 대할수록 노예들은 열심히 일함으로써 보답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해 왔다. 내 경험이 그렇다. 지시한 것보다 많은 성과를 내어 포드 주인님을 놀라게 하는 것은 기쁨의 원천이었던 반면, 그다음 주인들 밑에서는 감독관의 채찍 외에는 더 이상의 수고를 자극하는게 없었다. - 7장. p.102

하지만 진정한 불행은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평생 동안 알 수 없었다는 점 입니다. 그의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노예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 '똑같은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너무나 당연히 노예를 부리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윌리엄 포드 만큼 다정하고 고결하며 솔직한 그리스도교인은 없었다고 밝혀 두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그러나 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영향력과 인맥들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는 노예제 밑바닥에 내제되어 있는 해악을 보지 못했다. 그는 다른 인간을 복종시키고 있는 인간의 도덕적 권리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자기 이전의 조상들과 똑같은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은 빛으로 사물을 보았다. 다른 환경, 다른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다면, 그의 인식은 틀림없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이성의 빛을 따라 똑바로 걸어가는 주인의 본보기였고, 그의 소유가 된 노예들은 행운이었다. 7장. p.95

그 이후의 주인들에게서 이런 '똑같은 매개체'가 더욱 구체적으로, 더욱 잔인하게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가장 잔인한 형태로 존재하는 노예제가 그들이 지닌 인간적이고 훌륭한 감정들을 야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고통받는 인간을 목격하고 -노예들이 토해 내는 고통의 비명을 듣고-무자비한 채찍에 몸부림치는 노예를 보고-개에게 갈기갈기 물어뜯긴 노예를 보고-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고 수의나 관도 없이 매장된 노예를 보고- 날마다 이럴진대 그들이 잔인해지고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게 되는 것 외에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노예 소유주가 잔인한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그가 몸담고 있는 체제의 잘못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습과 사회의 영향을 이겨 내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채찍은 노예의 등을 후려치라고 있는 것이라고 배우기 때문에, 그는 성장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가 쉽지 않게 된다. - 제14장. pp.199-200.

그리고 이런 사회의 영향으로 노예주들과 노예주의 가족들은 필연적으로 무감하고 잔인해지게 되지요.

이런 잔인무도한 행동이 노예 소유주들의 가정에 미치는 효과는 분명하다.(...)어린 소년은 그 노인을 혼내면서, 어린 마음에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특정 횟수의 채찍질을 선언하고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채찍질을 가했다. (...) 그걸 보고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철두철미한 녀석이라고 칭찬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그런 훈련을 받다보면, 타고난 본성에 상관없이 어른이 될 무렵에는, 그러지 않으려 해도, 노예들의 고통과 슬픔에 아주 무감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 인도적이고 관대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조차, 이 극악무도한 체제의 영향으로 필연적으로 무감하고 잔인해진다. 18장. pp.250-251

수기는 그가 노예주로부터 구출되었지만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못했습니다. 그를 팔아넘긴 노예 상인들이 당시의 법률 하에서 흑인의 발언들을 제대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아 무죄로 석방된 것이죠. 또한 수기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책 출간 이후 노예제의 참상을 고발하던 솔로몬 노섭은 활발한 강연 활동 중 행방불명되게 되는데 노예제를 찬성하는 세력에 희생되었다는 추측만 낳을 뿐 오늘날 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미국 사회는 첫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며 외형적으로는 이전의 부끄러운 흑인 인권 유린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 전체적으로 인종을 차별하는 문화가 남아있으며 종종 해외 뉴스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죠.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첫 여성 대통령을 뽑았지만 아직 사회 전체적으로 남녀 차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작된 지역간의 갈등은 일부 사이트를 중심으로 더욱 과격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강한 자와 약한 자를 나누길 좋아하는 이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노예 12년> 이었습니다. 



노예 12년 - 10점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