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 Note/인문교양

인간다운 신들을 만나는 시간 - [안인희]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세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을 능멸하거나 건방진 태도를 보이는 인간들에게 벼락을 내리거나, 여신의 알몸을 훔쳐봤다고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제우스는 아름다운 인간 여인만 보면 온갖 동물로 변신해 유혹하여 아이를 낳게 만들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이루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긴 그래야 뭔가 좀 더 '신' 다우려나요?


하지만 북유럽 신화의 신들을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게르만 신화가 맞다, 북유럽 신화가 맞다 며 이름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게르만 신화 중의 한 갈래라고 보는게 맞으며, 이 신화의 모태가 된 설화들과 이야기들이 대부분 오늘날의 북유럽으로 분류가 되는 아이슬란드에서 1220년 경 쓰여진 <스노리 에다(신 에다)>에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요즘 출판되는 대부분의 서적이 '북유럽 신화'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 저도 북유럽 신화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모자란 모습도 있고,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마는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농부의 아들을 실수로 죽였다가 신들이 오히려 농부에게 포박당하고 협박 끝에 엄청난 보물로 보상해주고서야 풀려나기도 합니다.(이 보물 중에는 저주걸린 황금반지 하나가 섞여있었는데 바로 이 이야기들이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차용되었고, 이는 또 판타지 대작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더군다나 북유럽 신화는 Sad Ending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신들의 황혼, 라그나뢰크를 끝으로 모든 신들이 죽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죠.


사실 이렇게 북유럽 신화의 신들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종말까지 기록에 남게 된 것은 이 신화를 글로 기록한 시인들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800~1200년 사이에 <옛 에다>를 쓴 시인들이나 1220년 경 <스노리 에다>를 쓴 스노리 스툴루손이 모두 기독교로 개종한 상태였기 때문이죠.


새롭게 종교적 패권을 차지한 기독교에 밀려, 그 옛날의 종교이자 신적 존재 였던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대폭 수정되어야할 필요성이 있었을 듯 합니다. 이교도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절대반지>의 개념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남게 되었고, 모든 신들은 왜곡되고 풍자되어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워낙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었던 북유럽신화는 기독교도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형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미를 얻게 되었고, 덕분에 그 재미난 이야기들이 오늘날 무수히 많은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어 북유럽 신화 자체는 몰라도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단편적으로 나마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언맨>을 보고 <아이언맨2>를 보니 이상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네요?

그 등장인물들은 마블코믹스 각각의 히어로들이 뭉친 '어벤져스'라는 단체.... 그리고 이를 다룬 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어벤져스>를 보고 나니 @_@;;; 헐크야 이미 알고 있었고... 여기서 또 새로운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를 만나게 됩니다.


관련 영화리뷰

2013/11/24 - [Cinema/Drama Review/SF/판타지] - 토르 : 다크 월드 (2013) Thor : The Dark World


사실 그 이전까지 북유럽 신화를 거의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토르는 그냥 만화 히어로이겠거니 했는데 영화 <토르>를 보고 나니 생각이 확 달라지는 겁니다. 거기서 너무나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캐릭터는 물론 아스가르드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이 너무나 치밀해 검색을 해보니... 역시 탄탄한 신화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었죠.


북유럽 신화를 어느정도는 알아야 이 시리즈를 더 재미있게 보겠구나 싶어서 바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니 이 책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더군다나 세트로 사면 50% 할인 >_<


단행본 3권 정도의 많다면 많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3권의 책을 읽는데는 반나절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글쓴이가 어려운 내용도 워낙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글을 적어준 타고난 이야기 꾼인 것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글 중간중간에 들어간 재미난 삽화들과 관련 유물 사진들이 텍스트를 더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이야기를 하고 마는게 아니라, 저자 스스로 이 이야기가 적어진 배경을 연구하고 생각해서 적어준 많은 해설들이 그냥 들어도 재밌을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신화와 전설들인만큼 이런 풍부한 상식을 가지고 이끌어주는 글쓴이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북유럽신화를 즐기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다만 1,2 권이 먼저 출간되고 3권이 나중에 출간된 성격 때문인지, 각각의 이야기를 다른 원전을 가지고 더 세밀하게 서술한 부분이라서 그런지 <니벨룽겐의 반지> 이야기의 원전이 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1,2,3 권 여기저기 흩어져서 비슷하게 반복되어 서술되는 부분은 한군데로 모아서 각 원전별로 이런 차이가 있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도 들었지만, 하루에 몰아서 읽을게 아니라면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 것도 이야기를 음미하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


이 책은 저에게 참 많은 선물을 준 책입니다.

우선 평범한 책, 영화 리뷰 블로그가 될 뻔한 제 블로그를 책과 영화 속에서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모으는 하나의 지식의 샘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주었죠 ㅎ

그래서 대중문화 속에 남아있는 북유럽 신화의 흔적을 찾아보는 하나의 샘을 만들어서 매주 월요일에 연재중이랍니다.

http://mimisbrunnr.tistory.com/category/지식의 샘/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특히 재미나게 즐기던 마블 코믹스 시리즈의 영화들을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 점도 참 고맙습니다. 하긴 이제는 예전에 즐겨보았던 일본SF 대하소설 <은하영웅전설>의 여기저기 숨어있는 북유럽신화에서 유래한 이름들도 눈에 확 들어오고, 여러 대중문화에 남은 흔적들을 쉽게 알아챌 수 있으니 그것또한 큰 선물이 되었네요 ㅎㅎ


또한 안인희라는 믿고 볼 수 있는 옮긴이를 발견한 점도 크나큰 선물입니다. 독일어권 인문.사회 분야에서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기신 분 같은데 앞으로 그쪽 분야 책을 고를때 번역본 고민을 줄여줄 수 있는 이름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세트 - 전3권 - 10점
안인희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