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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샘/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25. 우트가르트-로키 성에서의 대결

지난 시간부터 토르 신의 시종 트얄피와 뢰스크바가 등장하는 모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거인 스크리미르와의 만남 이야기를 살펴봤는데요, 토르 신이 이래저래 체면을 구길 정도로 어마무시한 거인의 이야기는 재미있으셨나요?  오늘은 거기에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우트가르트-로키의 성에 당도한 토르 일행의 모험 이야기입니다.



지난 연재

20. 인간의 신분을 만든 하임달 신

21. 거인에게 시집가게 된 토르 이야기

22. 천둥의 신 토르

23. 토르의 시종 : 트얄피와 뢰스크바

24. 어마무시한 거인 스크리미르와의 만남



거인 스크리미르가 사라진 이후 점심 무렵에 토르 신 일행은 거대한 성을 발견합니다. 성문에 다가간 토르 신이 온 힘을 다해 문을 열려했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열 수 없었습니다. 결국 틈을 살짝 벌리고 비집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죠. 성 안 커다란 홀에는 왕이 앉아 있고, 그 양편에 놓인 긴 벤치에는 거인들이 앉아있었습니다.





왕은 스스로를 '우트가르트-로키(Utgard-Loki)'라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에서는 특기가 없으면 머물 수 없다면서 토르 신 일행에게 특기를 보여줄 것을 요구합니다. 여정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없어서 불안해서 였을지, 아니면 잠시 이 신화를 기록한 스노리가 잊고 있어서 언급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로키 신이 처음으로 말을 합니다.


"이 중에 나보다 빨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요."


우트가르트-로키는 로키의 도전을 받아들여 로기(Logi)라는 거인을 내보냅니다. 홀 한쪽에 커다란 나무 접시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고기를 산더미로 쌓아놓고 대결을 하도록 했지요. 로키 신은 고기 뿐만 아니라 뼈까지 씹어 먹었지만 로기는 거기에 더해 나무 접시까지 삼켜버렸습니다. 신들과 거인들의 첫 번째 대결은 거인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대결에는 토르 신의 시종 트얄피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장기인 뜀박질을 요구했고 우트가르트-로키는 후기(Hugi)라는 작은 거인을 내보내어 경주를 시켰습니다. 후기는 얼마나 빨랐는지 순식간에 반환점을 돌아 아직 출발점 근처에 있는 트얄피를 스쳐 지나갈 정도였죠. 두 번 더 경주를 했지만 트얄피가 반환점에 가기도 전에 후기는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번에도 신족의 패배입니다.


우트가르트-로키는 토르 신에게 무엇을 잘할 수 있냐 물었고, 토르 신은 술마시기를 잘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우트가르트-로키는 하인을 불러 뿔로 만든 술잔과 술을 가져오게 시켰습니다.


"이 뿔잔에 든 술을 단번에 비우면 대단한 술꾼이라 할 수있다. 그러나 세 번에도 다 비우지 못하면 보잘 것 없는 술꾼이다."



네덜란드 Frisian Museum에 보관중인 16세기 뿔잔



뿔로 만든 술잔은 크기는 그닥 크지 않았지만 길이가 아주 길었습니다. 토르 신은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지만 한참을 마셔도 술이 줄지 않는 느낌이 들고 숨이 차서 입을 떼었습니다. 술잔을 들여다 보아도 술은 줄어든 눈치가 아닙니다. 두 번 더 들이켰지만 술잔을 비울 수는 없었습니다. 토르 신의 이런 모습에 우트가르트-로키는 다른 제안을 합니다. 자신의 고양이를 바닥에서 완전히 들어보라는 것이었지요. 자신의 성에 있는 젊은 거인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얄밉게 빼먹지 않았구요.


우트가르트-로키의 커다란 고양이를 힘껏 들어올려보았지만 아무리 들어올려도 고양이의 네 발은 바닥에 붙어있었습니다. 토르 신이 젖먹던 힘까지 다해도 겨우 한 발만 바닥에서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고양이가 너무 크고 토르가 너무 작은 것 같다며 비웃는 우트가르트-로키에 화가 난 토르는 거인 중 누군가와 싸움을 해보겠다고 제안합니다.


우트가르트-로키는 성의 늙은 유모 엘리(Elli)를 불러왔습니다. 늙은 할멈의 모습이었지만 토르 신이 모든 힘을 다해서 쓰러뜨리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엘리가 토르 신을 밀치자 토르 신은 버티다가 결국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토르 신의 일행은 물론, 토르 신 자신도 우트가르트-로키의 성에서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모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힘으로는 세상 최고라고 자부하던 토르 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가고 말았지요. 밤은 깊었고 우트가르트-로키는 토르 신 일행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우트가르트-로키는 아침상을 차려주며 손님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스가르트로 돌아가려는 토르 신 일행을 성문 밖 까지 따라나와 배웅하면서 지난 밤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진실을 말해줍니다.


관련 연재

24. 어마무시한 거인 스크리미르와의 만남


먼저, 숲에서 만난 스크리미르라는 거인은 우트가르트-로키가 변장한 모습이라는 겁니다. 토르 신이 풀지 못한 식량 보따리는은 마법의 쇠끈으로 봉인된 보따리라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절대 풀 수 없는 물건이었던 것이지요. 세 번이나 두들겨 팬 거인의 머리통은 사실 근처에 있던 산이었습니다. 우트가르트-로키의 마법으로 토르 신이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망치 밑에 산을 옮겨 놓았던 것이죠. 덕분에 산은 묠니르의 모양처럼 네모 반듯한 세 개의 골짜기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어서 어제의 대결 이야기도 설명해 줍니다. 먼저 로키 신과 먹기 대결을 한 로기(Logi, 불 이라는 뜻의 단어)는 사실 불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기 뿐만 아니라 나무접시까지 홀라당 태워먹은 것이지요. 그리고 트얄피와 달리기 대결을 한 후기(Hugi, 생각이라는 뜻의 단어)는 우트가르트-로키의 생각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생각보다 빠를 수는 없죠.


토르 신과의 대결은 더 다이내믹합니다. 토르 신이 들이킨 뿔잔의 끝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토르 신이 어마어마하게 먹어대는 바람에 바닷물의 수위가 내려갔고 이게 요즘 사람들은 썰물이라고 부르는 자연현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토르 신이 들어올린 고양이는 사실 미트가르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중요한 괴물입니다.)였는데 이 거대한 뱀을 살짝 들어올리는 바람에 요르문간드가 자신의 꼬리에서 입을 떼고 말았다고 합니다.(요르문간드는 입으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데 이 크기가 중간계 전체를 둘러싼 크기와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토르 신과 싸운 엘리라는 할멈은 사실 세월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신이라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지요.





이야기를 다 들은 토르 신이 화가 나서 묠니르를 우트가르트-로키의 머리에 휘둘렀지만 이미 우트가르트 로키는 물론 그의 거대한 성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거인의 마법에 농락당하고 만 것이지요.


이 이야기에서 토르 신은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와 그의 일행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화이기도 합니다. 토르 신의 힘은 정말 대단하며 그의 시종 트얄피는 생각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는 점이지요. 그리고 거인들은 토르 신과 직접적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지만 대신 속임수와 마법에 능해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다는 점도 보여주지요. 


또한 이 이야기는 로키 신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대칭적인 구도가 나타납니다. 불을 관장하는 로키 신과 불 그 자체인 로기가 대결을 하고, 거인들의 왕인 우트가르트-로키라는 이름에서도 아제 신족 중의 하나인 로키 신 자신과의 대칭점이 보이지요. 사실 후에 다룰 라그나뢰크에서 로키 신의 자식들이 신들의 멸망에 큰 역할을 하고 로키 신은 거인들의 편에 선다는 점에서 이 설화는 어떻게 보면 요즘 소설의 복선에 해당하는 섬뜩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상징과 옛 북유럽 지역에서 쓰이던 단어들을 이용한 수수께끼같은 이야기였지만 재미있으셨나요? 다음 시간에는 토르 신과 거인 흐룽니르와의 대결 이야기를 살펴볼께요 ^^ 다음 시간에 만나요~






<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는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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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안인희, 2011,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웅진지식하우스.

강응천, 1998, 바이킹 전사들의 북유럽 신화여행, 마루(금오문화).



http://de.wikipedia.org/wiki/Skrymir

http://en.wikipedia.org/wiki/%C3%9Atgar%C3%B0a-Loki

http://en.wikipedia.org/wiki/Drinking_horn

http://en.wikipedia.org/wiki/Elli

http://monster.wikia.com/wiki/Jormung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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