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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샘/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20. 인간의 신분을 만든 하임달 신

지난 시간에는 프라야 여신의 목걸이 브리징가멘을 찾아준 하임달 신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임달 신은 아스가르트의 파수꾼이라는 별칭 이외에도 빛의 신이라는 직함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수호하는 신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에게는 '모든 인간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가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연재

15. 누가 아스가르트에 성벽을 쌓았을까요?

16. 프라이 신에게 칼이 없는 이유는?

17. 프라야 여신과 힌들라 이야기

18. 프라야 여신의 목걸이 브리징가멘

19. 브리징가멘을 찾아준 하임달




옛 에다에 남은 기록입니다. 옛날에 하임달 신이 리크르(Rigr)라는 이름으로 중간계를 떠돌아 다닌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항해 끝에 어느 바닷가에 닿게되었는데 거기서 문이 활짝 열린 집에 들리게 됩니다. 그곳에는 아이(Ai, 증조할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라는 남자와 에다(Edda, 증조할머니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죠. 리크르는 늙은 부부가 대접한 저녁을 먹게 됩니다. 노부부는 리크르에게 겨가 잔뜩 달라붙은 지저분한 빵과 수프를 주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리크르는 노부부의 침대 가운데에 누워 양편에 아이와 에다를 두고 누워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흘 낮과 밤을 머물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아이와 에다의 집에 들른 리크르 "Rig in Great-grandfather's Cottage" (1908) by W. G. Collingwood



아홉 달이 지나가 에다는 누런 피부와 검은 머리를 가진 사내아이 트렐(Trell, 머슴 이라는 뜻입니다.)을 낳았습니다. 이 아이는 아주 튼튼하게 자랐고 여행자들의 짐을 짊어지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머슴과 하녀가 되었다고 하네요.


리크르는 길을 계속 가다가 이번에는 문이 반쯤 열린 집에 들리게 됩니다. 그곳에는 아피(Afi, 할아버지라는 뜻)와 암마(Amma, 할머니라는 뜻)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리크르는 사흘을 보내고 떠납니다. 아홉 달 뒤에 암마는 불그스름한 피부에 금발을 지닌 카를(Karl, 자유인이라는 뜻)이라는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카를은 황소를 길들이고 쟁기를 맞추고 집과 헛갖을 짓고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농부가 되었답니다.



리크르는 또 다시 길을 가다 문이 잠기지는 않고 살짝 열린 집에 다다르게 됩니다. 여기서는 파디르(Faðir, 아버지라는 뜻)모디르(Móðir, 어머니라는 뜻)라는 부부를 만나게 되지요. 남자는 바닥에 앉아 화살을 깎고, 부인은 길게 끌리는 푸른 옷을 입고 남편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집에는 아름다운 식탁보가 덮인 식탁 위에 은그릇에 담은 여러 요리와 귀한 주전자에 담긴 값진 포도주를 리크르에게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사흘을 보낸 리크르가 떠난 후 아홉 달 뒤에 이들 부부는 가벼운 곱슬머리를 가진 야를(Jarl, 귀족이라는 뜻)이라는 사내아이를 낳습니다. 야를은 어려서부터 창과 방패를 휘두르고 활을 쏘고 창을 던지며 사냥개를 모는 연습을 하였죠.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리크르는 다시 중간계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트렐과 카를은 들리지 않고 야를만 만나러 갑니다. 리크르는 야를에게 손수 루네 문자를 가르치고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땅과 사람을 내주죠. 야를은 전쟁을 지휘하고 수많은 궁전을 짓고 넓은 땅을 지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많은 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코누르(Konur, 왕이라는 뜻)는 특히 루네 문자에 능하고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고 새들의 말을 이해하고 자제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뒷날 코누르는 이름처럼(?)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하임달 신은 결국 인간 사회의 신분인 머슴, 농부, 귀족을 모두 만든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신은 오직 귀족에게만 돌아와 더 많은 지식과 재산을 주고 후손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북유럽 신화가 전해지던 중세 유럽의 지배 원리였던 신분제 사회를 확립하기에 아주 좋은 에피소드라는 생각이 들지요?


우리 옛 건국 신화에서도 고구려의 주몽이나, 가야의 수로왕, 신라의 박혁거세 등은 모두 알에서 태어나는 등 일반인들과 다른 비범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여 평민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도 했었죠? 또 북유럽 신화의 이번 이야기가 독특한 점은 증조대, 조부대, 그리고 부모님대에 이르면서 점점 신분이 나아진다는 모양새를 띄고 있다는 겁니다. 불교 문화권에서 자리 잡은 윤회 사상이나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현세의 삶이 내세의 자신의 신분을 정하듯 신분제 국가에서 자신의 신분이 전생의 업보라는 개념과도 어느 정도 닿아있는 문화적 유사성을 볼 수도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브리징가멘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토르 신이 등장하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이니 많은 기대부탁드리며 다음 주에 만나요~



<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는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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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안인희, 2011,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웅진지식하우스.

강응천, 1998, 바이킹 전사들의 북유럽 신화여행, 마루(금오문화).


http://en.wikipedia.org/wiki/Rigr

http://en.wikipedia.org/wiki/Heimdal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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