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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샘/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28. 히미르의 세 가지 시험(2)

지난 시간에는 신들의 잔치에 쓰일 술을 만들 기 위해 토르 신과 티르 신이 거인 히미르의 솥을 얻으러 가는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거인 히미르와 토르 신 사이에 벌어진 세 가지 대결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연재

23. 토르의 시종 : 트얄피와 뢰스크바

24. 어마무시한 거인 스크리미르와의 만남

25. 우트가르트-로키 성에서의 대결

26. 허풍쟁이 거인 흐룽니르와 토르의 결투

27. 히미르의 세 가지 시험(1)




토르 신과 티르 신을 얼떨결에 손님으로 맞게 된 거인 히미르 토르 신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가기로 했습니다. 토르 신의 힘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히미르는 용기가 있다면 손수 짐승을 잡아 미끼를 장만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토르 신은 히미르의 소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좋은 검은 황소의 이마를 내리쳐 숨통을 끊고 머리를 잘라왔습니다.


히미르는 노를 저어 먼 바다를 향했습니다. 토르 신은 더 먼 바다로 가고 싶어했지만 미트가르트 뱀을 만날까 두려워 하는 히미르 때문에 늘 히미르가 고기를 잡는 구역에서 낚시를 했습니다. 힘센 거인 히미르는 손쉽게 커다란 고래 두 마리를 낚시로 잡았습니다. 제아무리 토르 신이라 해도 이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으리라 히미르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토르 신은 더 먼 바다로 배를 몰고 갔습니다. 마침내 토르가 닻을 내리고 황소 대가리를 낚시에 꿰어서 바다에 던지자 미트가르트 뱀이 물속에서 튀어올라와 미끼를 덥썩 물었습니다. 중간계를 둘러쌀 정도로 큰 뱀이 뱃전에 나타났고, 뱀이 힘을 쓰는 바람에 온 세상이 흔들렸습니다. 그런 괴물의 머리통을 토르 신이 묠니르로 때려잡으려는 찰라 겁에 질린 거인 히미르는 재빨리 칼로 낚시줄을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히미르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고래 2마리 보다 대단한 미트가르트 뱀을 토르 신이 잡을 상황이었으니 딱히 내기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토르 신이 이긴 게임이었습니다. 토르 신은 다잡은 뱀을 놓쳐서 기분이 상해있고 자신의 힘을 믿던 거인 히미르는 토르 신의 힘에 놀라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었죠. 히미르는 주제를 돌려보려 일을 나누어서 해보자고 제안도 했지만 토르 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노를 저어 배를 바닷가에 정박시키고는 고래 두 마리도 번쩍 들어 거인의 집까지 옮겨놓았습니다. 그리고도 딱히 지치지도 않아보였죠. 히미르는 토르 신의 힘을 시험하고자 두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히미르는 자신이 아끼는 아름답고도 튼튼한 술잔을 꺼내놓습니다. 그리고 이를 깨보라고 시키지요. 토르 신이 먼저 단단한 돌로 후려쳤지만 돌만 깨지고 말았습니다. 다음에는 잔을 들어 내리쳐보았지만 잔은 멀쩡했지요.


그때 티르 신이 슬쩍 속삭입니다. 히미르의 머리가 분명 술잔보다 단단할테니 머리통을 향해 잔을 던져보라는 것이었죠. 토르 신은 잔들 다시 주워들고 이번에는 히미르의 이마를 향해 힘껏 던졌고 잔을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히미르는 머리도 아프고 자신이 아끼던 잔도 깨졌지만 토르 신의 힘을 시험해보고자 마지막 시험을 제안합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엄청나게 큰 솥을 들고 궁 밖으로 들고 나가보라는 시험이었죠. 이는 토르 신과 티르 신이 바라던 바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티르 신이 도전해보았지만 한쪽 손도 없는데다가 솥이 워낙커서 결국 움직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토르 신이 나섰습니다. 토르 신은 솥 가장자리를 붙잡고 어깨에 걸치고 끌고 내려가면서 솥을 머리에 뒤집어 썼습니다. 솥이 워낙커서 토르 신의 몸을 거의 다 가리고 솥의 손잡이는 토르 신의 복사뼈에 닿을 정도였다고 하는군요. 이 상황에서 토르 신은 온 힘을 다해서 궁전 밖으로 걸어갔습니다.


시험에는 통과했지만 히미르는 이런 식으로 솥을 내줄 요량은 아니었나봅니다. 근처에 사는 다른 거인들을 불러모아 토르 신과 티르 신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티르 신이 솥을 두들겨서 토르 신을 밖으로 나오게 했을 때 히미르는 근처 사는 암벽거인들과 함께 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토르 신은 허리춤에 있던 묠니르를 꺼내 덤벼들던 암벽거인들을 모조리 때려잡고 말았습니다.


결국 거인 히미르는 솥도 뺏기고 목숨도 잃은 셈이죠. 이 거대한 솥은 에기르의 집까지 옮겨졌고 에기르는 약속을 지켜 매년 가을 솥에 잔뜩 술을 빚어 아스가르트의 신들을 초대해 풍요로운 연회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토르 신의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서는 뭔가 쌩뚱맞은 전개이기도 하고 허무하게 끝나는 감도 없잖아 있는 이야기였죠? 그래도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있습니다. 지난 흐룽니르와의 대결에서 거인들의 스펙(?)이 살짝 소개된 바 있습니다.


"약속한 날짜가 되자 거인들은 '그리오투나가르트'(Griottunagardr)에 모여 거대한 점토 거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키가 9마일이나 되고 가슴둘레가 3마일이나 되는 거대한 거인이었지만, 마땅한 심장을 찾지 못해 암말 하나를 잡아 넣어두었습니다.  산악 거인이었던 흐룽니르는 숫돌을 어깨에 둘러매고 돌 방패를 차고 토르 신을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거인의 키가 9마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번 이야기에서 등장한 히미르의 거대한 솥의 깊이가 1마일이라는 것을 지난 시간에 티르 신이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 살펴본 이야기에서 토르 신이 솥을 뒤집어쓰자 복사뼈가 보일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아제 신족들과 거인 들의 키 차이가 9배 정도 날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많은 그림들에서는 그림의 효과 때문인지 비슷한 크기로 그려진 그림들도 꽤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사용된 마일이라는 단위는 지금 통용되는 단위가 아니라 옛 도이치 단위로 '말타고 혹은 걸어서 세 시간 거리'라고 하니.... 거인의 키가 얼마나 클지 가늠이 안가죠? 아마 과장이 포함되었겠지만 신보다 거인이 엄청 거대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또한 이번 이야기에서 다시금 등장한 요르문간트르(Jörmungandr)와 토르 신의 악연도 흥미롭게 살펴볼 주제입니다. 우트가르트-로키 성에서 고양이인줄 알고 들어올렸던 그 뱀이 바로 이번에 싸운 뱀입니다.




이집트 신화의 아포피스나 성경에 등장하는 레비아탄(리바이어던) 등의 바다괴물들과 함께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점이 서로 다른 문화권에도 무언가 통하는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뱀이기도 합니다.


중간계를 한바퀴 빙돌아서 꼬리를 물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데 이 모양새 때문에  우로보로스(Ouroboros)와의 직간접적인 유사성도 거론됩니다. 꼬리를 문 뱀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문양은 여러 문화권에서도 등장하는데 머리(처음)과 꼬리(끝)이 계속 연결되는 구조인지라 '완전함', '영원', '윤회' 등을 상징하기도 했고, 특히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의 의미로 사용되 숭배되기도 한 문양입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는 벤젠의 화학식을 고민하던 케쿨레가 꿈에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모양을 보고 벤젠의 탄소고리식을 제시한 바가 있지요. 고등학교 때 화학을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교과서에서 익히 살펴본 에피소드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토르 신과 요르문간트르와의 악연은 후에 신들의 황혼 라그나뢰크 때 다시 최후의 일전을 겪으며 비로소 끝나게 됩니다. 토르 신과 거인들간의 이야기도 대부분 다뤄보고 있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거인왕 가이뢰트와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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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안인희, 2011,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웅진지식하우스.

강응천, 1998, 바이킹 전사들의 북유럽 신화여행, 마루(금오문화).



http://en.wikipedia.org/wiki/Hymir

http://en.wikipedia.org/wiki/Aegir

http://en.wikipedia.org/wiki/J%C3%B6rmungandr

http://en.wikipedia.org/wiki/Ouroboros

http://en.wikipedia.org/wiki/August_Kekul%C3%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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