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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영어권소설

잔혹한 그 날의 상처를 핥아주는 고양이 이야기

[서평] 그웬 쿠퍼의 <러브 인 뉴욕>(2013)


[그웬 쿠퍼] 러브 인 뉴욕 / 김지연 역 / 샘터 출판 / 출간일 2013-12-31 / 원제 Love Saves the Day (2013년)





고양이의 마음을 훔쳐본 듯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


마주보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가 인상적인 <러브 인 뉴욕>의 주인공은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고양이 프루던스 입니다. 맨해튼 뒷골목을 방황하던 사람을 무서워하던 길고양이 였지만, 폭풍우를 피해 숨어있던 공사장에서 우연히 사라를 만나고 그녀와 같이 살게됩니다. 음악을 사랑하던 레코드가게 주인 사라는 비에 쫄딱 젖은 고양이에게 비틀즈의 노래 'Dear Prudence'를 불러주며 노래 속에 등장하는 Prudenc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요.



늘 함께였던 사라가 어느 날 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고, 사라와 소원한 관계였던 그녀의 딸 로라와 로라의 남편 조시가 집에 찾아와 사라의 짐들과 자신을 데려가자 프루던스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소설은 갑작스레 변해버린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주로 전개됩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했던 고양이의 행동들을 저자의 상상력으로 그럴싸하게 그려냈습니다.


조시는 고양이 침대를 '스크래칭 포스트'로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데, 몇시간이고 쉬지 않고 그 위에다 손가락들을 세워 단련한다. 만약 내가 그 위에서 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나야말로 제대로 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데도, 조시는 날 쫓아내고 자기가 독차지해서는 잘못된 용도로 사용한다. - p.65 키보드를 고양이 침대로 오해한 프루던스의 생각


소설은 여러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전개됩니다. 사라를 잊지 못하는 고양이 프루던스와 사라를 잊고 싶은 로라와의 갈등, 직장을 잃은 조시와 로라 사이의 소원해진 관계, 어린 시절 겪은 사건 때문에 서로 멀어진 사라와 로라와의 관계. 그리고 뉴욕시의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놓인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알파빌 스튜디오를 지키기 위한 조시와 지역주민들과 시당국과의 갈등까지.


주된 갈등들이 주인공 로라를 중심으로 얽혀있으며, 소설의 진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알파빌 스튜디오 이야기 또한 과거의 로라 이야기와 연결되는 복선이 있으니 결국 로라를 중심으로 소설 전체가 엉켜있는 모양새입니다. 


소설 속에 가득 쌓인 오해와 갈등을 풀어가는 인물은 프루던스입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사라의 냄새가 다 없어지기 전에 자신이 듣지못한 사라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프루던스는 사라의 짐이 담긴 상자 속 물건들을 바닥에 어질러놓기 시작합니다. 로라는 엄마와의 추억이 가득한 물건들을 보며 프루던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프루던스는 사라와 닮은 로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의 평온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고양이와 동거하며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등장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며 오해를 풀어갑니다.


고양이 이야기로 풀어 쓴 우리 사회의 잔혹한 재개발 문제


작가 그웬 쿠퍼의 동물 구조대, 학대 아동 보호 단체, 노숙인과 빈곤층을 위한 사회 시설 등에서 일했던 경험이 소설 속에서 오롯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세 마리의 고양이 집사로 충실히 살아오면서 관찰한 고양이의 습성들은 이번 소설에서 프루던스의 눈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고양이의 입장에서 재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듯 합니다.


소설의 8할은 오해와 갈등으로 멀어진 사람들 사이를 프루던스 덕분에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소설에서 더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은 소설 사이 사이 등장하는 1998년 1월 24일, 뉴욕 스탠턴 가 172번지 건물이 철거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건물 외벽에 파손된 부분이 있다는 신고로 출동한 뉴욕 시당국은 건물에 입주해 있던 20여 명의 거주민들을 소지품하나 챙기지 못하게 즉시 대피시켰습니다. 결국 건물은 13시간 만에 모두 헐렸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20여 명의 거주민은 모텔 3일치 숙박권과 250달러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만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콘도미니엄이 들어섰습니다.


바로 그 날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웃의 고양이를 구하러 목숨을 걸고 건물에 들어간 로라와 이를 혼내는 과정에서 손찌검을 하고 만 사라 사이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남았고 이는 소설의 중심적인 갈등이 됩니다. 그리고 사라는 후에 프루던스를 만나 생활을 하면서 마침내 로라의 그 날의 행동을 이해하게 됩니다.


나는 그날 로라가 허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 때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두 다리로 걷든 네 다리로 걷든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을. (중략) 프루던스는 내 사랑을 새로운 집과 새로운 삶에서 로라에게 전해줄 것이다. 프루던스는 내 기억들도 로라에게 전해줄 것이다. (중략) 프루던스는 비록 그 형태가 변할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을 사랑을 로라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 p.394. 사라의 생각


이 소설에는 어머니와 딸의 잊지못할 상처를 남긴 그 날의 기억. 도시 재개발, 거주지정비 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감추어진 이면에는 사회 빈곤층에 대한 배려가 없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의 모습이 숨어있습니다. 불과 5년 전 용산참사를 겪은 우리에게 뉴욕에서 벌어진 또 다른 슬픈 철거민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네요.


덧) 매력적인 소설의 감동을 깎아내리는 빈번히 발견되는 오탈자와 어색한 번역투의 문장은 2쇄에서 꼭 수정되기를 바랍니다.


본 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14.02.0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3756)


러브 인 뉴욕 - 8점
그웬 쿠퍼 지음, 김지연 옮김/샘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