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 Note/시/수필

떠돌이 철학자 에릭 호퍼의 자서전

[서평]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2014)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방대수 역 / 이다미디어 출판 / 출간일 2014-02-28 / 원제 Truth Imagined (1983년).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의 자서전 <길 위의 철학자>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다미디어에서는 개정판 출간에 맞춰 저자의 아포리즘 모음집 <인간의 조건>, <영혼의 연금술>도 함께 내놨네요.


에릭 호퍼는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떠돌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면서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그 만의 독특한 철학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의 삶도 참 독특한 부분이 많은데요 7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가, 15살에 극적으로 시력을 회복하는 것은 놀랍기도 했습니다. 언제 다시 시력을 잃을지 몰라 눈에 대한 혹사를 걱정하지 않고 책을 탐닉하는 저자의 모습, 그리고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다가 처음 접한 장사일에 재능을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다시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서 돈을 셀 때 나는 깊은 회의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느껴 본 적이 없던 수치심 이었다. 내가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물건을 팔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경우에 장사는 타락의 근원임이 분명했다. 장사를 위해서는 거리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타락의 소지가 다분했고, 따라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 p.34



제가 에릭 호퍼를 처음 접한 이 책은 저자 사후에 출간 된 저자의 마지막 책 입니다.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저자의 삶을 되돌아보는 형태로 쓰여진 책이지만 누구와도 다른 삶을 살아오면서 독특한 사유를 해온 저자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더 없이 좋을 텍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격언, 경구, 잠언 등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아포리즘'을 저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아포리즘이라면 그나마 공감하기가 쉽지만 저자의 독특한 경험이나 사유가 깃든 아포리즘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또 이렇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부족으로 여겨져 괜히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하는게 싫었거든요.




음... 그런데 이번에 에릭 호퍼의 글을 만나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그것도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사실 모든 분야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첫 흥미를 느끼면 그 뒤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파고들게 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제가 접한 아포리즘들도 물론 대단한 글들이 많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니 다른 글들도 다시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서전 중간 중간에 에릭 호퍼의 사진들과 그의 대표적 아포리즘들을 편집해서 넣어놓았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공감을 받은 하나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Failure)

We Clamor for equality chiefly in matters in which we ourselves cannot hope to attain excellence. To discover what a man truly craves but knows he cannot have we must field in which he advocates absolute equality. By this test Communists are frustrated Capitalists.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자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자서전과 동시에 출간 된 두 권의 아포리즘 모음집들도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길 위의 철학자 - 8점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이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