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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한국소설

물욕으로 가득찬 현대 사회에 외치는 풋풋한 자연의 고함 - 이 시대의 봉이

[박희주] 이 시대의 봉이 / 책마루 출판 / 출간일 2013-12-15.


기존에 풍문으로라도 접하지 못했던 작가였고, 책 표지도 요즘 나오는 산뜻하고 멋진 표지들에 비해 뭔가 촌스럽기 그지 없어서 '별볼일 없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편견으로 접했던 이 소설집.


하지만 막상 읽고 나니 이렇게 허접한 표지를 만든 출판사와 편집자를 욕해야 될 부분이지 절대 작가에게 비난이 돌아가서는 안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희주 작가의 중편 소설 5편을 모은 <이 시대의 봉이>는 표제작인 <이 시대의 봉이>를 제외하고는 우리네 시골 마을의 정서를 듬뿍 담고 있는 구수한 소설집입니다.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시대의 봉이> 마저도 비정한 현대 도시에 환멸을 느끼는 화자의 감정 묘사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 작품인 만큼 소설집 전체가 풋풋한 자연의 정취를 각박한 현대 도시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이정표 같은 느낌입니다.



표제작 <이 시대의 봉이>에서 작가는 흔히 '똥퍼'라고 불리우는, 분뇨사업체를 운영하는 비열한 사장과 그 밑에서 일하는 가난한 고학생 알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재의 독특함은 둘째 치고라도,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화자의 묘사나 생각이 극의 분위기를 더욱 살리고 있으며, 후반부의 극적인 감정표현은 이 소설집 전체의 백미라고도 볼 수 있지만 맥락이 다소 과장되게 틀어져있어 읽는 독자들 마다 호불호가 갈릴 듯 싶습니다.


풋풋한 스무살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무 살>과 말썽꾸러기 속없는 아저씨로 보였던 '종근이 형님'의 반전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어떤 전설>에서는 시골 마을의 순박함이 구수한 사투리로 표현된 대사들과, 생생한 묘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암으로 아내를 잃고 두 아들들을 키우는 시인이 친한 친구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지리산으로 놀러가는 이야기를 다룬 <지리산에 아재가 산다>는 작가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양한 등장인물과 어울려져서 독특한 마음의 울림을 이끌어내는 매력적인 중편입니다.


제가 특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소리를 찾아서>라는 작품은 억척스럽게 살아오다 우연한 기회로 벼락부자가 된 한 여인이 악마같은 그놈의 돈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잃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를 피해 고향 근처 시루봉에 텐트치고 노숙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얻는 독특한 깨달음을 몽환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으로 오롯이 남았습니다.


작가의 문체에서의 독특한 특징은 작품을 써내려가면서 괄호를 이용해서 작품을 써내려가면서 작품 속 등장하는 단어들이나 상황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데 굉장히 어색해서 괄호보단 작품속에 그냥 녹여내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p. 9 / p. 92 / p. 191)


물욕으로 가득찬 현대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시끌벅적하고 더러운 도시를, 이와 극명히 대비되는 풋풋한 시골로 대표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곳에 살아가는 이들의 순박함을 녹여낸 작품을 엮으면서 독특한 매력을 내는 작품집. 삐까뻔쩍 현란한 디자인의 다른 책들을 비웃는 듯한 순박한 디자인의 표지에 담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개인 출판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촌스러운 표지 디자인은 서가에서 작품을 우연히 접하게 될 잠재적 독자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표지의 삽화야 작가가 의도한 바를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제목이나 책등의 디자인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표지만이라도 깔끔하게 다시 디자인 한다면 이 소설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대의 봉이 - 8점
박희주 지음/책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