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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샘/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30. 오딘신과 토르신의 말다툼

지난 시간까지 토르 신이 여러 거인들을 물리치는 에피소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토르 신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모두 묠니르로 적들을 때려부수는 이야기들을 아닙니다. 그가 다른 이와 말다툼을 벌이는 이야기도 <옛 에다>에 2편 실려있는데 오늘과 다음 주에 각각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은 오딘 신과의 말다툼 이야기입니다.


지난 연재

25. 우트가르트-로키 성에서의 대결

26. 허풍쟁이 거인 흐룽니르와 토르의 결투

27. 히미르의 세 가지 시험(1)

28. 히미르의 세 가지 시험(2)

29. 거인왕 가이뢰트의 계략



어느 날 오딘 신은 자신을 뱃사공으로 변장하고 스스로를 '잿빛수염(하르바르트 Harbard)'이라고 칭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토르 신은 거인들의 세상에서 거인들과 싸우고 돌아오는 길에 잿빛수염과 말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마침 그 날은 자신의 염소들이 이끄는 마차도 없이 걸어오는 길이였기에 오늘날의 덴마크와 스웨덴을 건너는 해협에서 바다를 건너고자 뱃사공을 불렀습니다.





자신을 건너편으로 태워주면 귀리죽과 청어를 주겠다고 꾀어봤지만 건방진 잿빛수염은 "네 아침밥을 자랑할 건 없다. 그렇게 큰소리칠 이유가 없지. 그 사이 네 어미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라고 대꾸하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거참 슬픈소식이군."하고 토르 신은 받아칩니다.


이 부분에서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던 토르 신의 어머니 신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의 지배를 받으면서 종교적인 의미를 잃고 민간에서만 수 세기를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북유럽 신화의 특성상 전승 과정에서 토르 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누락되고 이렇게 시구나 스노리 에다에 잠깐잠깐 등장하는 정도로만 남게되었습니다. 이름은 표르긴(Fjörgyn)이며 대지의 여신으로 추정되는 여신입니다.


여튼 토르 신을 비웃기만 하고 정작 태워줄 생각은 없어보이는 잿빛수염 때문에 토르 신은 애가 탑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오딘 신의 아들이자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신이라고 소개했지만 잿빛수염은 당황하기는 커녕 자신이 흐룽니르가 죽은 이후로 가장 세다고 되받아치지요.


이후에 두 신들은 서로 자신들의 자랑을 해나가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잿빛수염은 자신이 여자들을 꼬신 이야기들을 자랑하며, 토르 신은 거인들을 때려잡은 이야기를 자랑하면서 무용담 대결을 하는 식이었죠.


먼저 잿빛수염이 알그륀이라는 섬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섬에 있던 처녀들이 어찌나 어리석었는지 모래로 새끼를 꼬고, 골짜기를 더 깊게 파서 더 깊은 골짜기를 만들 정도인 섬에서, 일곱 자매를 꾀어내어 한 번에 동침한 이야기를 자랑삼아 들려줍니다.


자신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토르 신은 교활한 거인왕 가이뢰트를 무찌른 이야기로 되받아 칩니다.


이후에도 잿빛수염은 여자 이야기를, 토르 신은 적들을 물리친 이야기를 하지만 여기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난 전쟁터에 머물며 왕들 사이에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길 부추기고 평화가 발붙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네. 토르야 싸움터에 남아있는 머슴들 따위의 부탁들 들어주겠다만 말이야. 사실 싸움터에서 죽은 왕과 훌륭한 전사들은 오딘의 발할로 가거든."


잿빛수염이 말한 이 대사에서 오딘 신과 토르 신의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토르 신은 전장에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싸우지만 오딘 신은 우수한 전사들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는 일을 벌이곤 했습니다. 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오딘 신은 신들의 황혼, 라그나뢰크를 준비하기 위해 우수한 군사들이 필요했고 자신의 궁전 발할에 이들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다만 이들은 오직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은 전사들이어야만 했고 때문에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곤 했다는 것이지요.


자꾸 깐죽대는 잿빛수염을 토르 신이 위협하자 잿빛수염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네 놈이 허풍을 떠는 시간에 차라리 네 부인을 걱정해라. 오딘이 네 아름다운 부인 지프를 범해서 네 의붓아들인 울(Ull)을 가지게 했다지? 자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토르 신의 아들 딸에 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기록된 별도의 이야기는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아들인 울 신 같은 경우는 스키, 활, 사냥의 신 등으로 <스노리 에다>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스노리 에다에는 단순히 지프 신의 아들이자 토르 신의 의붓아들이라고만 소개되어 있지만 여기서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해지는 대사인 것이지요.





기록과 번역에 따라서 이 대목은 로키 신이 지프 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그 이야기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하여튼 토르 신을 놀리기에는 더 없이 좋은 소재였던 셈이지요.


결국 격분한 토르 신은 버럭버럭 화를 내지만 대화를 나누던 중에 잿빛수염의 정체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모든 존재들을 관장하는 오딘 신임을 눈치채고 제발 이 쪽으로 배를 대어 자신을 싣고 건너게 해달라고 애걸하지만 잿빛수염은 멀리 돌아가는 뭍길만 알려주고는 갈길을 가버리고 맙니다.





결국 오딘 신과 토르 신의 말다툼은 오딘 신의 판정승으로 끝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토르 신과 오딘 신의 다양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들의 성격을 명확하게 해주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다보면 헛갈리는 부분이 생길때마다 물어보곤 하면 다른 이야기들과 섞어서 정리를 해주던 기억이 다들 있으시죠? 오늘의 시구는 그처럼 토르 신과 오딘 신의 이야기들을 섞어 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다룬 이야기는 국내 출판된 북유럽 관련 서적마다 모두 이야기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의 명확한 텍스트가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딘 신의 여자 이야기가 다소 야하다고 판단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나 신화 소개서에는 상당부분의 대사가 없거나 아예 이 대목이 빠진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토르 신의 모험 이야기도 이전에 우리가 살펴본 이야기들 이외의 거인들과 싸운 이야기도 섞여 있는데 이 역시 구전상의 문제로 기록이 남지 않은 경우가 있어 이 부분도 출판 과정에 빠진 경우도 많이 있구요.


하르바르트 이야기, 혹은 잿빛 수염 이야기로 통칭되는 이 이야기가 다른 텍스트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가 되더라도 이는 원전의 문제이겠거니 하고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토르 신의 말다툼의 다른 이야기, 난쟁이 알비스와의 다툼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만나요~




<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는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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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안인희, 2011,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웅진지식하우스.

강응천, 1998, 바이킹 전사들의 북유럽 신화여행, 마루(금오문화).



http://en.wikipedia.org/wiki/H%C3%A1rbar%C3%B0slj%C3%B3%C3%B0

http://en.wikipedia.org/wiki/Fj%C3%B6rgyn_and_Fj%C3%B6rgynn

http://en.wikipedia.org/wiki/Ul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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