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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르 디플로

우리의 대학교육, 안녕들 하십니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호 31면. <'일류 대학' 브랜드를 소비하는 시대> - 김은하(전 중앙일보 기자, <비싼 대학> 옮긴이)



지방에서 태어나서 그 지방의 지방 대학을 다닌 저는 상대적으로 학벌에 대한 차별을 겪을 기회도 적었고,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학벌이라는게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느낀 일화는 군대에서 겪었습니다. 저는 육군보다는 근무조건이 낫다는 풍문을 듣고 공군을 지원했습니다. 훈련소에서 열심히 가점을 따놓아야 원하는 근무지에 배속될 수 있다는 풍문도 듣고왔기에 훈련병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근무를 하려했고 어쩌다 보니 다른 동기와 '호실근무'라는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뜸 조교가 저와 그 동기가 다니는 대학을 묻는 겁니다. 동기는 서울의 한 사립대학이었고, 저는 지방국립대였으니 조교의 머리속 대학 서열에서는 비슷비슷했나봅니다. 이제 학과를 묻습니다. 그 또한 조교가 우열을 나누기 어려웠던지 결국 가위 바위 보 라는 가장 공정한(?) 방법으로 선정했습니다만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죠.


누군가를 평가하는 잣대에 그 사람의 특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학과와 전공을 묻는 것은 일면 그럴싸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다니는 대학 자체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뭔가 씁쓸하죠? 특히나 우리의 입시과정이 다년간의 성적을 평가한다거나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고 주로 '수능'이라는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게 결정되는 구조인데 말이죠.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열망은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비싼 대학>(지식의 날개 출판, 2013)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대학의 등록금으로 지불된 금액 대부분이 쓸모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의 학부 교육이 차별성과 우수성을 잃었다는 점을 여러 증언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은 우리를 위해 여기에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하버드에 온 이유는 우리가 받는 교육이 아니라 이 학교의 학위가 우리에게 주는 명성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 하버드 3학년 재학생


많은 고등학생들은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많은 추억들을 포기하고 입시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정작 대학생들은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꿈꾸던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합니다. 막상 수업에 들어가도 대학 교육이 갖는 의미는 퇴색되고 더 높은 취업률을 위해 대부분의 강좌들이 취업에 연관되게 수정되고 있으며 일부 사립대는 취업률이 낮은 인문, 예술계열 학과들을 통폐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정된 자리를 많은 이들이 갈망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자들을 도태되는 사회.

취업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특정 학문의 고등교육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다양성을 잃은 사회.


이런 사회에서의 대학교육, 정말 안녕하지 못합니다.



기사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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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14.1 - 10점
르몽드(월간지) 편집부 엮음/르몽드(월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