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의 샘/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

21. 거인에게 시집가게 된 토르 이야기

지난 시간에는 인간의 신분을 만든 하임달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북유럽 신화의 신들을 실제로 믿고 이야기가 널리 구전되었을 중세 시대의 신분제를 왕족들과 귀족들이 하위 계층들을 지배하는 근거로 삼고자 만들었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북유럽에서 가족들을 부르는 이름들도 남아있는 독특한 이야기였죠?


오늘은 프라야 여신의 브리징가멘과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아마도 요즘 북유럽 신화를 접하신 분들이라면 가장 관심있을 토르 신이 등장하니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연재

16. 프라이 신에게 칼이 없는 이유는?

17. 프라야 여신과 힌들라 이야기

18. 프라야 여신의 목걸이 브리징가멘

19. 브리징가멘을 찾아준 하임달

20. 인간의 신분을 만든 하임달 신




토르 신이 어느 날 잠에서 깨어 쇠망치 묠니르를 찾았지만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인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보물인데 잃어버렸으니 정말 큰일이었죠. 토르 신은 그 즉시 로키 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로키 신의 의견에 따라 그들은 프라야 여신에게 가서 누구든 매로 변할 수 있는 옷을 빌려 거인들의 나라인 요툰하임에서 정보를 얻기로 하였죠.


로키 신은 매 옷을 입고는 그 즉시 요툰하임으로 날아갔습니다. 거기에서 거인 왕 트림(Þrymr)을 만나게 되었죠. 그런데 트림의 태도가 수상쩍습니다. 너무나 느긋하게 아제 신들의 안부를 묻는게 아니겠습니까?


로키 신이 혹시 토르의 망치를 감추었냐고 묻자 선선히 답해줍니다. 


"내가 토르의 망치를 감추었지. 땅속 8마일 깊이에 묻어두었다. 내가 프라야를 신부로 맞이할 수 있도록 이곳으로 데려오기 전에는 토르는 다시는 망치를 찾지 못할 거야."(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권, 223p)


로키 신은 다시 매의 모습으로 변해서 신들의 왕국 아스가르트로 날아가 토르 신을 다시 만납니다. 두 신은 프라야 여신에게 다시 찾아갔는데 성질급한 토르는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프라야 여신을 정말 트림에게 시집이라도 보내려는 양 면사포를 씌워서 요툰하임으로 데려가려 하였습니다. 분한 프라야는 너무나 화가 나서 펄쩍 뛴 나머지 소중한 목걸이 브리징가멘이 목에서 벗겨져 땅에 떨어지기 까지 하였습니다.


모든 아제 신들이 발할에 모여 회의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지혜로운 하임달 신이 꾀를 하나 내놓습니다. 바로 토르 신에게 브리징가멘을 걸어주고 치장을 시켜서 시집을 보내자는 거였죠.


당사자인 토르는 수치심에 펄펄 뛰었지만 로키 신은 그 생각이 재밌어서 킥킥거리며 달리 뾰족한 수도 없는데 그렇게 하자고 부추깁니다.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인 토르 신은 여신 들의 정성어린 치장으로 프라야 여신으로 분장하게 됩니다. 머리카락과 붉은 수염은 리넨 천으로 가리고, 큼지막한 돌덩이를 가슴에 묶어서 봉긋한 여신의 젖가슴처럼 보이게 하고 신부들이 입는 아름다운 옷도 입히고 면사포로 얼굴도 가리니 몸집이 제법 크긴하지만 신부처럼 보였죠. 거기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걸이 브리징가멘까지 걸치니 일단 변장은 완료되었습니다.


Thor is unhappily dressed by the goddess Freyja and her attendants as herself in Ah, what a lovely maid it is! (1902) by Elmer Boyd Smith


목소리까지 변장할 수는 없는 토르 신이라 절대 말을 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로키 신을 하녀로 변장시켜 같이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신부 일행이 요툰하임에 도착하자 거인들이 준비한 떠들석한 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입은 뚫려있었기에 토르 신은 원래 먹성대로 준비한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맙니다. 황소 한 마리와 연어 여덟 마리를 먹고도 후식과 꿀술까지 먹어데니 덩치 큰 거인들도 놀라고 말았죠. 재치있는 로키 신이 얼른 결혼에 긴장한 나머지 여드레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시장해서 그런다고 둘러데었습니다. 


묠니르를 찾게 된 에피소드 속 토르신을 묘사한 10세기 아이슬란드에서 발견된 청동상. 아이슬란드 국립 박물관 소장.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결혼식을 할 때 축복의 의미로 신부의 무릎에 망치를 올려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묠니르는 워낙 무거웠기 때문에 덩치 큰 거인들이 무려 여덟이나 붙어서 겨우 가져와 토르 신의 무릎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순간 토르 신은 베일과 리넨 천을 벗어던지고는 묠니르를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상에 번개가 내리치고 천둥이 울렸고 트림을 비롯한 주위에 있는 모든 거인들을 때려잡았죠.


Thor's Battle Against the Jötnar (1872) by Mårten Eskil Winge


북유럽의 결혼 풍습 덕분에 토르 신은 우스꽝스러운 일을 당하긴 했지만 무사히 소중한 묠니르를 찾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토르 신의 묠니르는 문화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북유럽 신화가 종교적, 신적 의미를 가지고 있던 바이킹 시대의 북유럽에서는 묠니르 모양의 팬던트가 부정을 정화하는 의미로 부적처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묠니르에서 번개가 나오는 모습은 우리에겐 불교의 상징으로 익숙한 만자(卍)나 이를 역으로 뒤집은 스바스티카 등의 기호에 남았습니다. 북유럽에서는 역만자 문양을 하겐크로이츠라 하여 행운을 상징하는 룬문자로 사용되었으며,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슴에 남은 길상이라하여 길하게 여겼고, 힌두교에서는 역만자를  코끼리 머리 모습을 한 신인 가네샤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했습니다. 



게르만 전통을 중시하던 나치 독일에서는  북유럽에서 사용되던 하겐크로이츠(Hakenkreuz)를 자신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죠. 나치 독일의 악행으로 인해 북유럽신화에 기인한 이 문양은 독일에서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특히 나치 독일 시절 대표적인 선전예술가였던 한스 슈바이처(Hans Schweitzer)가 묠니르라는 예명을 사용한바도 있기에 독일 등 유럽지역에서는 묠니르라는 명칭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Thor's Hammer(토르의 망치) 등으로 돌려 말하는 암묵적 금기도 생겼다고 합니다.


오늘은 프라야 여신의 브리징가멘이 사용된 독특한 에피소드를 다뤄봤습니다. 북유럽의 고대 결혼 풍습과 토르 신이 후에 나치 독일에 사용되는 모습도 살펴보았네요.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토르 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 주에 만나요~



<대중문화 속 북유럽 신화>는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ㅁ<


모바일에서는 네이버 포스트로 더 편하게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http://m.post.naver.com/mimisbrunnr



참고문헌

안인희, 2011,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웅진지식하우스.

강응천, 1998, 바이킹 전사들의 북유럽 신화여행, 마루(금오문화).


http://en.wikipedia.org/wiki/Thor

http://en.wikipedia.org/wiki/%C3%9Erymr

http://en.wikipedia.org/wiki/%C3%9Erymskvi%C3%B0a

http://en.wikipedia.org/wiki/Swastika



본 포스트에 사용된 삽화 중 별도 표기한 삽화를 제외한 모든 삽화의 출처는 위키백과이며, 모든 저작권은 위키백과에 있습니다.